얼마전 지하철에서 한 할머니가 계단에 굴러 숨졌다.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던 청년이 할머니를 밀어뜨려 발생한 사고로 노년과 청년세대의 불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도대체 노년과 청년을 반목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2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네사람이 만나 '우리가 싫어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서로에게 평소 품고있던 불만과 바람을 털어놓았다. 참가자는 이충열(75·전직교사) 김봉애(66·서울YWCA 부회장) 정혜련(24·숙명여대 정보과학3) 유덕재(20·서울대 재료공학1)씨다.정혜련 지하철 일반석에 앉아있어도 노인들이 오시면 으레 양보하는데, 어쩌다 행동이 좀 늦을 때도 있잖아요. 그럼 대뜸 큰 소리로 야단을 치시는거예요. 너무 창피하구요, 순간적으로 반발심이 생겨요. 노인이라고 왜 양보받는 것을 당연시하나, 너무 권위적이지 않나 싶은….
김봉애 어른들이 젊은이한테 대뜸 "야, 좀 일어나"하는 걸 몇 번 봤는데 반말부터 하는 것은 나도 좋지않다고생각해요. 아무리 어려도 타인한테는 우선 예의를 갖춰야하죠. 그런데 우리가 좌식생활을 하는데다 여자들의 경우 집안일이며 출산 등을 겪어서 60, 70대가 되면 대부분이 무릎이 시원치 않아요. 서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요. 젊은이들이 그런 걸 이해하고 좀 양보를 많이 해줬으면 해요.
이충열 나도 그런 사람보며 뭘 저렇게 떠드나 싶기도 한데 한편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자리를 잘 비켜주질 않아요. 그럼 난 이렇게 생각하지. 저 젊은이는 관절염이 있어서 못 일어나겠거니, 저 학생은 공부하느라 지쳐서 그렇겠거니…. 그래 펑펑 놀며 사는 내가 차라리 서있는 게 낳지…. 그리고 요즘엔 지하철 안에서 남녀가 애정표현이 너무 진하다고 해야할까. 그런걸 보면 내가 더 민망해져요.
유덕재 지나친 애정표현이라는 게 기준이 어디냐는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요즘은 애정표현이 많이 자연스러워졌거든요. 도서관에서 서로 껴안고 앉아있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니까요. 사랑의 표현을 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게 한정돼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정 요즘은 1∼2년 차이만 나도 세대차이를 느낄 만큼 사회가 급속도로 바뀌는 것 같아요. 저만 해도 한산한 지하철 안에서 맞은편 남녀가 얼싸안고 있으면 '앗' 싶거든요. 그래도 제 또래는 곧 '음 요즘은 저렇게까지도 하는구나'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는데 어른들은 아니신 것 같아요. 어르신들은 자신의 기준만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김 그래도 공공시설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하는 거잖아요? 아무리 젊은 층에게 익숙하다 해도 공공장소에서는 삼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이 어떨 때는 '그래, 우리도 청년시절에는 어른들이 보기에 마뜩찮았겠지' 싶을 때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 젊은이들을 지하철에서 보면 한편 귀엽다가 한편 미웠다가 하지.
김 젊은이들과의 관계에서 노인들이 제일 섭섭해하는 말은 "어르신은 모르셔도 됩니다" "모르시는 게 낫습니다" 이거예요. 한창 대화가 오가다가 이런 소리를 들으면 나이 많다고 의사결정과정에서 무시당하는구나 싶어요. 물론 그런 소리를 한 사람은 노인들을 배려한다는 의미였겠지만 노인 입장에서는 내가 살아오면서 쌓은 연륜이 분명히 도움이 될텐데 그걸 인정 안해주니까 서운하지요.
유 휴대폰의 새로운 기능이나 컴퓨터와 관련된 새로운 개념들이 아주 많거든요. 그런 개념 자체를 노인들이 모르기 쉬우니까 하는 소리일수도 있는데….
이 그건 세계일주를 하고 다니는 사람하고 시골노인하고 단순 비교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시골노인네라고 세계일주 안하고 싶겠어요? 그런 문제에선 젊은이들이 노인의 기를 좀 돋워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40년간 노인들은 날개없이 추락만 거듭했어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20,30대는 주체세력으로 각광받았지만 60,70대 노인들은 아무 생각없이 시키는데로 표만 던지는 사람으로 완전히 도외시됐지.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좀 추켜주고 모르면 알려주는 것도 필요해요.
유 어르신들도 무조건 잘못을 야단치기 전에 젊은이들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머리염색하는 것은 일반적이잖아요? 저도 하고 싶은데 할아버지가 염색은 나쁘다고 하면서 절대 못하게 하세요. 그러나 나쁜 이유는 말을 안하세요. 그러니까 저로선 이해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이 그거야 귀한 손주가 염색하면 머리카락 건강을 해칠까봐 그런거지. 그건 조상으로부터 받은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는 것과 같은 거니까.
정 그건 가치관의 문제인 것 같은데요. 요즘 머리염색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 거든요.
이 노인네들도 조금씩 변화하기는 해요. 받아들이는 속도가 젊은이들만큼 빠르지 않을 뿐이지. 우리도 예전엔 흑단처럼 까만 머리가 예쁘다고 했는데 요즘은 적당히 갈색을 띤 머리가 더 자연스러워 보이니까.
김 나는 요즘 청년들이 과연 역사의식을 갖고 있나 의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너무 자기랑 가족만 알지, 사회나 인간에 대한 고민이 떨어지는 것 같거든.
유 그건 맞는 말씀 같아요. 사실 역사의식을 운운할 시간이 없어요. 머리가 좀 깰만한 고등학교 시절에는 2학년만 돼도 대학이 인생 최대의 과제가 되거든요. 학교에서도 국사 공부는 구한말까지만 해요. 근대 이후는 교과서에 나오긴 하지만 수능시험에서 거의 출제가 안되니까 수업시간에도 아예 배우지 않구요.
정 입시 치르느라 고생했으니까 대학 1년은 놀고 2학년때부터는 또 취직해야 하니까 영어공부하느라 정신없지요.
이 결국은 우리 세대의 잘못이예요. 열심히 공부해 출세하라고 가르쳤지, 올바른 인간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았으니까. 노인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고쳐 나가려고 노력해야할 것 같아요.
유 부탁이 있는데 지하철 탈 때 경로석이나 일반석이나 다 비어있을 때는 노인들이 일반석으로 와서 앉으셨으면 좋겠어요. 서로 자꾸 옆에 있어야 대화도 나누고 세대차이를 좁힐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좋은 말이예요. 나도 부탁을 한마디 하면 노인네들 몸도 약하지만 마음도 약해요. 노인들에겐 젊은이들의 다정한 한마디와 관심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남의 집 노인네들에게 부드러운 한마디를 던져주는 것이 얼마나 선한 일인지 알아줬으면 해요.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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