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돼서 지역사회 봉사를 하고 싶은 고교 1학년 진호(17)는 수학과 과학시간만 되면 머리가 아프고 괜히 짜증이 난다. 그렇지만 9월 문을 여는 이우학교로 전학가면 자신이 좋아하는 지역활동, NGO와 관련된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국내 최초의 도시형 대안학교로 관심을 끌고 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동원동 이우학교(교장 정광필)가 최근 경기교육청으로부터 학교설립인가를 받아내고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실험적인 교육을 위한 걸음마를 시작했다.
분당신도시 미금역에서 금곡IC를 지나 차량으로 5분 남짓 걸리는 용인시 고기리 인근 광교산 자락에 위치한 이 학교는 9월부터 중학교 1학년 60명, 고등학교 1학년 80명 등 모두 140명이 전입 형식으로 입학하게 된다.
이우학교가 도시형 대안학교로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획일화한 기존 공교육에서 탈피, 학생들을 다양하고 깊이 있게 가르치는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
국어, 영어, 수학 위주로 10여 개의 과목만 있는 기존 학교와 달리 농업과학, 윤리와 사상, 전통윤리, 삶과 철학, 인턴쉽연구, 지역활동과 NGO, 농사, 통합기행, 영화와 과학 등 100여 개의 과목으로 세분화했다.
여기에 고교2학년부터는 원하는 과목만 골라서 시간표를 짤 수가 있어 수학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 일주일에 몇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다.
국내 최초의 대안학교인 간디학교에서 프로그램 개발에 관여해온 교사 최영준(41)씨는 "현재 7차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학생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실험적인 교육 프로그램들로 구성돼있다"며 "수업의 다양화가 질적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교사들의 수업내용을 학기 전에 모두 공개, 학생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과 소질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교사를 담임으로 선택, 입학부터 졸업까지 공부는 물론 생활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한 학사진로담임제도 두드러진 특징. 현재 모집된 교사 19명중 기존 교육계에 몸담은 교사는 3분의1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생활협동조합 간부, 방송기획 PD 등을 거친 이색 경험자, 대학을 갓 졸업한 초보 교사 등으로 구성돼있다. 학교측은 앞으로 교사를 50명 가량으로 늘리면서 이 비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예정이다.
학교 시설을 가동하는 전기와 먹거리의 자급자족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도 기존 학교와 다른 점이다. 5개 동으로 구성된 학교는 지열발전과 태양광을 이용, 냉·난방은 물론 전기시설을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의 배설물을 3단계 정화시스템에 의해 오염 없는 물로 재생한다. 식사 때 남은 음식물을 발효시켜 만든 퇴비는 배추, 고추, 깻잎 등 농작물을 키우는 거름으로 재활용한다. 학생, 교사, 학부모 등이 주축이 돼 유기농산물과 문구류, 간식 등을 공동구매하는 생활협동조합을 교내에 설치하고, 1년에 2차례 농촌체험활동을 통해 직접 수확한 쌀을 저렴한 가격에 갖다 먹는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이우학교가 기존 교육의 틀을 깨는 실험학교로 알려지면서 주변의 관심이 커지는 데 대해 학교측은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설립초기부터 이명현(전 교육부장관) 강지원(변호사) 전보삼(만해기념관장) 이종태(전 한국교육개발원 기획조정팀장) 등 내로라하는 교육운동가들이 사재를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영재학교 내지는 귀족학교를 표방한다는 왜곡된 소문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이광호(39) 사무국장은 "이우학교는 기본적으로 장래에 사회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키우는 것이 목표"라며 "부와 명예를 버리고 남을 위해 봉사할 자세가 돼있지 않은 학생은 사절"이라고 단호하게 못박았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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