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는 말처럼 매혹적인 것이 또 있을까. 이 여름, 눅진한 열기에 갇힌 도시 속에서 팍팍한 삶을 꾸려야 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은 아련한 첫사랑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것 이상의 설레임이다. 그러나 막상 떠나보라. 떨쳐내고 싶은 일상이 고스란히 따라붙기 일쑤이다. 사람과 소음에 부대끼고 냄새와 쓰레기에 시달리고, 끊임없는 작은 다툼에 지치고…. 아아, 떠나도 끝내 버리지 못함이여. 그래도 어쩌랴. 번번이 배반 당한들 떠남에 대한 기대는 언제나 유혹적인 것을.이종승(李鍾承·59)씨는 평생 떠나는 것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아니, 스스로 떠나기 보다는 다른 이들을 잘 떠나도록 도와온 사람이다. 떠나는 순간의 설렘을 끝까지 온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는 우리나라 여행업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베테랑 여행 안내인이다.
이종승씨는 스물여덟 때인 1972년부터 지금껏 여행 가이드를 해오고 있다. 매 주말 거르지 않고 여행길에 나서길 31년째. 한 달에 네번씩만 쳐도 1,500회를 훌쩍 넘는다. 그 동안 직접 안내한 여행객은 4만5,000여명. 한번 여행에 적게 잡아 30명으로 계산해도 그 정도다. 최소한 국내에서는 비교를 불허하는 기록이다.
게다가 가이드란 게 입담으로만 될 일인가. 감춰진 먹거리, 숨겨진 길, 마을인심과 풍습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를 두루 꿰고 있어야 한다. 하찮은 것이 여행객에게는 뜻밖의 무한감동이 되기도 하므로. 그러려면 사전답사가 필수적이다. 그에 더해 아무도 몰랐던 비경을 발굴해 제공하는 것도 명 가이드의 조건이다. 주중은 이씨에게 그런 일을 위한 시간이다. 그렇게 따지면 여행횟수는 2배 이상 늘어난다. 답사 때만 모는 승용차를 30만㎞ 주행 후 바꾼 것만도 다섯 차례. 하기야 한달에 고작 2∼3일 집 방바닥에 등을 댄 적도 허다하니 역마살(煞)이라는 말로도 그의 팔자를 담기에 부족하다.
원래 그는 암벽등반이 전문인 산악인 출신이다. '장독산악회'라는 대학연합 산악회를 창설했을 정도다.(유난히 장남과 독자가 많아 붙인 이름인데 산행 후 술을 독째 마신다는 뜻도 덧붙여졌단다) 학교 졸업 후 "얽매 사는 직장생활은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1년쯤 사업을 하다 이 길에 들어섰다. 친구 부탁으로 심심풀이 삼아 산행가이드를 맡았던 게 계기가 됐다. 80여명을 인솔해 겨울 운악산에 올랐는데 중간 쉼터인 현등사에서 술판을 벌리려는 걸 보고 기겁을 했다. "산에서 술 먹으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느냐." 소주를 몽땅 뺏고는 입이 잔뜩 나온 등반객들을 자일로 끌어가며 폭설 속의 능선을 무사히 넘었다. 그제야 다들 "저 친구 말 안 들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고마워 했다. 일행 속에서 그를 지켜본 신진관광 경영주의 지시로 바로 스카우트됐다.
당시 서울에 스무 곳 남짓한 여행사 직원은 선망의 직업이었다. 그런데도 산 친구들에게 무진 욕을 들었다. 어떻게 산을 돈 받고 다니냐는. "좋은 장비를 마련키 위해"라고 둘러댔지만 내심 제 한 몸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에 보람이 쏠쏠했다. 일찍이 강원 삼척의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 10여명을 끌고 경북 울진서부터 산길을 찾아 집에 온 적이 있으니 가이드는 타고난 천직이었다.
여행업 초창기였던 그 땐 주로 계 모임 여행이 많았다. 봄 한려수도, 여름 무주 구천동, 가을 설악산 등으로 장소도 빤했다. 계주나 총무가 한 50만원 들고 와 "돈에 맞춰달라"는 식이었다. "물정 모르는 아줌마들이었으니 마음만 먹었으면 돈 숱하게 벌었을 겁니다." 가이드일도 단순했다. 마이크로 '동백아가씨' 등을 구성지게 쫙 뽑으면 팁이 와르르 쏟아졌다. "월급 3만원 할 때 2박3일 여행 팁이 5∼6만원이었어요. 그걸로 손님들 박카스 사 드리고 운전사, 안내양 나눠주고… 집에 올 땐 늘 빈털터리였지요."
명 가이드로서 그의 자질을 보여주는 일화 하나. 80년대 초 YWCA할머니회원 40여명을 모시고 3박4일 한려수도 여행을 떠났다. 연세가 70∼80대였으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버스기사한테 "차 데꾸치면(도로 요철부분에서 튕김을 뜻하는 일본식 용어) 큰일나니 무조건 천천히 가라"고 신신당부했다. 정작 문제는 말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것이었다. "여기는 ○○휴게소입니다"하면 "뭐라구? 무슨 절?"하는 식이었다. 고심 끝에 모든 말에 타령조로 가락을 붙였다. "여기∼는 송광사∼입니다. 이∼ 절은 우리나라∼ 3대 사찰로∼…." 효과는 직방이었다. "얼씨구, 좋다. 송광사라네." 할머니들은 흥겨운 추임새까지 붙였다. "무엇보다 여행객의 성향을 재빨리 파악해지요. 점잖은 박사님들 모시고 가는데 '뽕짝' 메들리를 틀어주거나, 찐한 음담패설을 해대면 끝장이지요."
이씨는 82년 친구(김준기·金俊起 회장) 회사인 동부그룹 여행부로 옮겨 15년을 있다가 98년 독립해 승우여행사를 차렸다. (상호에 도울 우·佑자를 붙인 데서도 그의 가이드 철학이 드러난다) "오랜 고객들이 도와주셔서 빨리 자리를 잡았지요. 요즘도 어딜 가든 초창기 여행안내를 해드렸던 분들과 마주칩니다. '그때 같이 오셨던 그 분은?'하고 안부를 묻지요. '돌아가셨다', '병석에 누워있다'는 얘길 들으면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기도 합니다."
그가 오랜 경험에서 얻은 직원 채용 3원칙이 있다. 중산층 출신이어야 하고, 낙천적이어야 하고, 가급적이면 인물도 좋아야 한다. 그래야 팁을 밝히지 않고 귀찮고 어려운 일도 내색않고 분위기를 살려줄 수 있기 때문. "그래도 젊은 가이드들은 돈 받은 만큼만 해준다는 의식이 강해요." 야단칠 때마다 씁쓸하다고 했다.
요즘 이씨의 주 상품은 생태여행이다. 한강 발원지인 강원 태백의 분주령 들꽃여행 같은 것이다. 2∼3시간 걷는 코스의 당일여행이 많다. 그는 사실 백두대간 여행코스를 개발한 당사자다. 87년부터 시작, 지리산서부터 설악산 향로봉에 이르기까지 한달에 두번 주말에 릴레이식으로 다녀 2년8개월만에 끝냈다. 의기투합한 고객 33명이 함께 완주했다. 이후에도 91, 94, 98년 등 총 4번에 걸쳐 같은 방식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백두대간은 마약과 같습니다. 한번 빠지면 그 맛에서 헤어나올 도리가 없어요. 특히 천변만화의 일기변화 속에서 900∼1,000m 암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산-대야산-희양산-조령산 능선의 아름다움은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입에서 연신 소주 마신 뒤끝 같은 "카∼"하는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여행업계에서는 원래 은밀히 개발한 장소나 루트는 사업 노하우로 취급, 남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불문율. 그러나 이씨는 백두대간의 감동을 혼자만 간직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언론과 인터넷 등을 통해 모조리 공개했다. 이게 현재 유행처럼 돼버린 백두대간 답사붐의 계기가 됐다.
명함에 '한국을 아름답게'라는 표어를 박을 만큼 이씨의 자연보호 정신은 남다르다. 풀잎하나, 들꽃 한송이 못 건드리게 하는 것은 물론 쓰레기를 제일 잘 줍는 이에게는 다음 여행에 무료참가할 수 있는 티켓을 준다. 음식을 해먹지 않는 것도 철칙. 미리 식당에 밥을 맞춰두고 산에는 초컬릿이나 떡 같은 간식만 들린다. "산에 갈 때 필요한 건 손전등과 옷, 휴게소에서 챙긴 빨대(약수나 개울물 마시는데 그만이란다) 한 개 뿐입니다."
당연히 먹고 노는 여행문화는 질색이다. "어떤 차량들은 아예 '움직이는 식당'입니다. LPG통에 솥까지 싣고 다니며 여행지에서 밥, 국 다해먹고 쓰레기는 아무데나 버리지요." 사찰 입구에서까지 울려대는 "쿵짝쿵짝" 가요 소음도 그렇다. "아무리 지적해도 소용없어요. 조용히 즐기는 젊은 연인들에게서 한가닥 여행문화의 변화 가능성을 봅니다."
전국 어디든 눈감고 마을길까지 그려낼 수 있고, 산이라면 서울의 남산 빼놓고는 다 올랐다는 그지만 뜻밖에 해외여행 경험은 일천하다. 백두산에 두번 오른 게 고작. "숨겨둔 비경이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특히 명산 부근에 많지요. 게다가 한 장소도 4계의 맛이 완연하게 다릅니다. 그러니 이 좋은 것들 놓아두고 미처 외국에 나갈 틈이 없었어요. 아내한테는 65세 되면 한번 나가보자고 약속했습니다."
아내 얘기가 나온 김에 물었다. "평생 그렇게 떠돌아 다녔으면서도 무슨 재주로 안 쫓겨 났습니까." 네살 아래인 부인도 대학 때 도봉산 우이암 암벽을 타다 만났으니 잘만 끼를 북돋워 주었으면 그 못지않은 여행가가 됐을 터. 하지만 함께 다니면 아무래도 다른 여행객들에게 신경이 덜 갈까 봐 혼자 다녔단다. "아내가 한 때는 우울증으로 고생하기도 했는데 이젠 완전히 '숙달'됐어요." 짐짓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지만 여행객만큼도 챙겨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은 역력했다.
/편집위원 junlee@hk.co.kr
# 이종승씨가 권하는 여행수칙 셋.
1.사전공부를 충실히 할 것. ― 지도를 펴놓고 코스도 그려보고 인터넷 등을 통해 현지 정보를 충분히 습득한다.
2.가급적 예약하지 말 것. ― 시간·목표가 정해지면 초조해지고 난폭운전하게 되며 가는 동안의 즐거움이 반감된다. 숙소는 목표지 주변 한시간 거리 안팎의 소박한 곳을.
3.짐을 최소화할 것. ― 이것저것 싸 들고 가면 다 먹고 써야하는 강박관념이 생기는 법이므로.
하나 더, 온천에서는 독탕이나 가족탕 아닌 대중탕에 갈 것. (피부병 있거나 지저분한 사람은 남의 눈 때문에 못 들어가니 대중탕이 가장 깨끗하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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