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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다도해 작은섬 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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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다도해 작은섬 신수도

입력
20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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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다도해상국립공원 관광지도에서조차 챙겨주지 않는, 공원 끝 자락에 신수도(新樹島)라는 섬이 있다. 뭍에서 가깝고 주변에 창선도 사량도 등 이름께나 알려진 다도해 섬들이 즐비한 탓일까. 모르긴 해도, 골프장 18홀 코스 하나 빠듯하게 앉힐 만한 30만평 남짓이 섬 면적의 전부인 까닭도 있겠다. 서운하지 않느냐는 짓궂은 물음에 섬 주민들은 빙그레 웃고 만다. 물 때 맞춰 바지락 훑고, 철 맞춰 고기 잡아 먹고 살기 바쁜데 그게 뭔 대수냐는 식이다. 섬 행정단위가 언젠가 동에서 리가 되고, 다시 동으로 불리나 싶더니 얼마 전부터는 아예 통 단위로 주저앉았지만 주민들은 그런가 보다 했다고 했다. 경남 사천시 동서동 26통, 27통 180여 세대 500여 명의 주민 대부분은 그래서, 다도해 3,000여 개 섬은 물론이고 전국 도서지역 가운데 가장 먼저 초고속 정보통신사회에 편입된다는 개벽의 변화에도 '그런 가 보다 할 뿐', 호들갑스레 천리 길을 달려 온 기자를 소 닭 보듯 맞이했다.고즈넉한 자족의 섬

삼천포 신항에서 뱃길로 10분. 여객선이 방파제 틈을 비집고 신수항에 들면 섬의 본동 마을이 한 눈에 담긴다. 언덕배기 하얀 집이 교회당이고, 그 아래가 전교생 29명의 신수초등학교. 그 밖에 눈에 띄는 건물이라면 피서철에나 손님이 든다는, 마을 어촌계 소속 신수모텔과 횟집이 전부다. 그 흔한 다방 하나, 슈퍼 하나가 없다.

철 이른 섬은 고즈넉했다. 완만한 비탈에 기대 앉은 양옥집 틈새로 아이 두엇이 어깨동무 겯고 나서기도 비좁은 실핏줄 같은 길이 깔렸다. 어느 길을 잡고 오르든 5분이면, 섬의 등줄기를 타고 남북 3㎞를 종주하는 신수도의 스카이웨이, 2m 폭 간선도로와 만난다.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10여 분이면 추섬이고, 남쪽 길을 타더라도 그 시간이면 섬의 부도심이자, 섬 속의 섬마을인 대구마을에 닿는다. 그 너머는 바다를 딛고 선 난대수림 울창한 섬의 최고봉, 대왕가산(해발 58m)이다. 길은 바다와 하늘에 닿아 있고, 그 간극은 부신 7월의 햇빛으로 가득했다.

섬에 사이버 세상이 열리고

지난 2월 사천시청 정보화 담당자와 위탁교육업체인 스카이랜드 관계자들이 관내 마을 정보화 교육차 섬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마을 회관에 주민들은 잔뜩 모였는데 교육이 불가능하더라구요. 인터넷 컨텐츠는 메가급인데 회선은 56Kb 전화 모뎀선이니 오죽했겠습니까." 바쁜 사람 오라가라 한다는 주민들의 지청구에 시청 홈페이지 하나 온전히 못 띄운 교육팀은 식은 땀만 흘려야 했다. 시와 스카이랜드는 KT(옛 한국통신)에 생떼 같은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섬에 다행히 마이크로웨이브 무인국사가 있어 기술적으로 무선기반 초고속통신망 구축이 가능하다는 점과, 뭍에서 가깝고 풍광이 빼어나니 시범 삼아 다도해 첨단 섬 관광지로 꾸며보자는 게 명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섬 전체 가구가 20년 동안 써준다고 해도 통신망 구축비용조차 뽑기 힘든 그 사업에 KT는 공기업체제 마지막 공익예산을 털어 3억원의 비용을 투입했고, 전남 일부 큰 도서의 유·무선 복합형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순수 무선기반의 첨단 초고속 웹체제 구축사업이 그렇게 시작됐다. 낡은 아날로그 구리선도 8개 회선의 UTP케이블로 교체됐다. 섬 어디서든 인터넷주소(IP)만 부여 받으면 유·무선 초고속통신이 가능하게 되면서 시와 스카이랜드는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보급형 신형PC를 단체 구매토록 하고 중고PC에 운영체계를 업그레이드해 보급키로 했다. 주민들은 섬에 전기가 든 1975년 이후 처음, 새로운 층위의 문화 충격을 경험하게 됐다.

"인터넷이 그리 좋은 기라요?"

변화에 가장 예민한 것은 당연히 섬 아이들이었다. 이제 TV에서 선전하던 인터넷 과외도 받을 수 있겠고, 게임 CD 없이도 웹 게임을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시청 신수출장소 황명숙(29)씨는 "벌써 초·중학생을 둔 상당수 집에서 이 달부터 인터넷 학습지 과외를 단체 신청했다"고 귀띔했다. 신수초등학교 4학년 현수는 "말로만 듣던 화상채팅도 하고, 노래도 다운받아 들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친구들이 인터넷 얘기만 하면 자리를 아예 피해버렸다던 삼천포 통학생 혜림(13)이는 "인터넷을 뒤져야 하는 숙제도 친구한테 부탁하지 않아도 되고, 전화요금 때문에 엄마 눈치 안 봐서 좋다"고 말했다.

인터넷의 효용가치야 어른들도 모를 리 없다. 강정명(42)씨는 "서류 한 통 뗄라 케도 배타고 나가모 하루 일인데 좀 있으모 집에서도 떼 볼 수 있다더마요"라고 했고, 임명자(56)씨는 "우찌 하는 지는 몰라도 컴퓨터로 혈압도 재고 약도 지어준다니까 희한하게 됐다"고 반색을 했다. 마을 청년회는 '바지락 같은 수산물도 인터넷으로 팔아보면 어떨까', '시 예산으로 섬 홈페이지도 만들었다니까 관광객 상대 직거래 장터도 열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농산물을 직거래해서 값을 더 받는다 치모, 수산물은 생물(生物)이라 그거 두 배도 더 남길 수 있지예. 그렇게만 되모 진짜 살만 할낀데." 대구마을 끄트머리에서 3월부터 12월까지 죽방렴만 바라보며, 전화도 시계도 없이 사는 김정판씨도 예외가 아니다. "인터넷이 그리 좋은 기모, 밑져야 본전인께 나도 배워봐야겄네요."

해상 사이버 관광시티의 꿈

시와 스카이랜드, 마을 어촌계 등은 신수도의 관광 컨텐츠 구축에도 마음을 두고 있다. 마을 영어(營漁)법인을 만들어 오프로드 4륜 오토바이를 관광객들에게 대여해 섬을 둘러보는 사업을 하고, 갯벌이나 섬 둘레 죽방렴을 활용한 어촌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관광수요를 봐가며 장기적으로는 쓰레기 수거비용 명목의 섬 입장료를 받는 방안도 생각중이다. 다도해의 변방 신수도가 꾸기 시작한 해상 사이버 관광시티의 꿈이다.

/신수도(사천)=글·최윤필기자walden@hk.co.kr

사진 정창효기자

■정보화교육업체 스카이랜드 김학록 사장

신수도에서 배로 불과 20여분 거리인 통영시 수우도는 7, 8년 전부터 무인도가 됐다. 주민들이 모두 섬을 버리고 뭍으로 나와버렸기 때문이다. 결국은 낙후한 교육 의료 행정 인프라 탓이다. 신수도 사정도 다르지 않아 최근 10년 새 주민 절반이 줄었고, 남아있는 30,40대 남자 가운데 절반은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섬 변두리 격인 대구마을에는, 안방에 앉아서 연륙교 낙조를 볼 수 있는, 기가 막힌 빈 집들도 적지 않다. 소문을 덜 탄 덕에 아직 부동산 투기는 없고, 땅 값도 그대로지만 시가 가장 신경을 쓰는 대목이 그것이라고 했다. 시는 남해 창선도 개발로 이 일대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면 곧 바로 도시개발계획구역으로 묶어 투기를 봉쇄한다는 계산이다. 주민들에게도 들어와 살 사람이 아니면 집이든 땅이든 절대 팔지 말라고 당부, 또 당부하고 있었다.

스카이랜드 사장 김학록(38·사진)씨도 사천 토박이. 섬의 개발 및 보존계획 가운데 상당수는 그의 제안으로 비롯된 것이다. 주민 인터넷 교육과 인프라 사업 때문에 섬을 둘러본 뒤 반해버린 그는 "돈 많은 외지인들이 섬 주민들 내몰고 싸구려 관광지로 변질시키는 방식의 개발이 아닌, 주민들에게 연중 소득이 돌아가는 건강한 관광·휴양마을로 가꿔 섬을 지키는 일을 돕고 싶다"고 했다. "우선 섬 인트라웹을 통해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전국 네티즌들이 신수도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도록 하는 게 꿈입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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