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12시 유흥가 도로에 취객들이 늘어서 있다. 처음엔 그런대로 질서를 지키지만 하나 둘 택시를 먼저 잡으려고 차도 가운데로 나선다. 이윽고 모든 사람들이 차도로 진출하면서 2차선 도로는 1차선으로 줄어든다.요즘은 불경기라 뜸하지만 종전에는 흔했던 술집 거리의 풍경이다. 나만 앞에 나가면 택시 잡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또 나만 뒤쳐져 있으면 집에 언제 갈지 모른다. 그래서 다들 앞으로 나간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앞에 있으면 이익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차선만 줄어들어 모든 사람의 귀가 시간이 늦어진다.
또 입시의 계절이 찾아왔다. 해마다 7월이면 많은 대학들이 1학기 수시모집을 실시한다. 면접장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부모들을 보면 늘 안쓰럽다. 정규교과보다 3년 앞서면 어느 대학 가고, 1년 앞서면 어느 대학도 못 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학부모의 마음을 흔든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남보다 앞서가는 경쟁에 자녀를 참여시킨다. 과외비가 월급을 초과하고, 정규수업은 아까운 과외 시간을 까먹게 하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아이들은 '올리버 트위스트'에나 나올 법한 초과노동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자식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서로 앞서지 않기 협약이라도 맺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래도 몰래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5공 때처럼 경찰 동원해서 과외단속하고.
부모의 입장이 아니라 경제학을 전공하는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곳에 있다. 엄청난 고생은 했지만 그 결과로 우리 아이들이 더 똑똑해졌다면 과외비와 공부시간은 투자로 간주하여야 한다. 공장을 건설하는 투자보다 더 중요한 이 투자의 비용은 원칙적으로 국내총생산(GDP)에 포함되어야 하고, 그럴 수 있다면 우리의 GDP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돈과 시간이 우리 아이들의 머리 속에 과연 무엇을 생산했나?
초등학교 때부터 3년 앞서나간 아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고3 것까지 다 알고 있다. 너무나 좋은 일이다. 프랑스의 그랑제꼴 지망생처럼 그때부터 고등수학을 공부하고 그리스어로 호머를 읽기 시작한다면. 하지만 우리의 학생은 고2가 되어도, 고3이 되어도 계속 고3 공부만 할 뿐이다. 그 고생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모두 평범한 고3이 되었을 뿐이다. 우리 대학입시의 풍경은 술집골목의 그것과 똑같다.
해마다 면접에 들어가면 그 고3 실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내년부터 입시에 반영되는 7차 교육과정에 희망을 걸어 볼 수도 있다. 아이들의 적성에 맞춘 창의력 위주의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형식만 보면 걱정이 앞선다. 내년부터 문과 학생들의 수능 수학시험에서 미적분학과 통계학이 빠진다. 이제 경제학과 교수들은 신입생들에게 고교 수학을 강의하여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어가 수능시험에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은근한 압력으로 이과 학생들은 국어시험을 면제 받는 불상사가 생길뻔 했다.
수많은 문화적, 사회적 문제가 얽혀 있는 이 난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천박한 경제학자가 알 턱이 없다. 그러나 박사과정에서 한국인을 더 이상 뽑지 않을 것 같다는 미국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면 겁부터 덜컹 난다. 수학은 중국학생보다 못하고 창의력은 유럽 학생에 못 미치기 때문이란다.
부모도 교육전문가도 정치가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 아이의 소득은 우리 아이가 옆집 철희에 비해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 가에만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앞으로 점점 더 제르진스키, 사사키, 쳉 보다 얼마나 더 똑똑한가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송 의 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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