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의 서점인 반스앤노블에 들어서면 '신간서적' '소설' '비소설'같은 표지판을 단 도서 진열대가 즐비하다. 여기에 최근 새로운 표지판이 등장했다. '누가 알았겠는가?(Who knew?)', 뜻풀이를 하면 '미처 몰랐던 내용을 담은 책들' 정도가 될까? 그런데 여기에 진열된 책 대부분은 무엇무엇의 역사나 자연사를 다룬 것들이다. 책 제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지판의 문구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거짓말쟁이의 설화(The Liar's Tale)'는 거짓말 또는 허위의 역사를, '화장실(The Porcelain God)'은 화장실의 사회사를, '너무나 친절한 당신(You're Too Kind)'은 감언의 역사를, 그리고 '연보라색(Mauve)'은 색깔의 발명과 그 역사를 다루고 있다. 과연 역사가 있으리라고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었다.이 중 주목할 만한 몇 권의 책들을 살펴보자. 2001년에 출판된 뉴욕시립대 역사학과 교수 캐롤 그론만의 저서 '님포매니아의 역사(Nymphomania: A History)'는 '지나친 성욕을 가진 여성'으로 정의되는 님포매니아의 역사를 사회적, 의학적, 법적 시각으로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성학자 앨프리드 킨제이조차 님포매니아를 '당신보다 더 많이 성교를 하는 여자'라고 한 것에서 증명되듯이, 님포매니아는 여성의 욕망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불편한 시각에서 비롯된 허구적인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쾌하게 밝혀주고 있다.
올해 4월 출판된 '뻣뻣한―알고 싶은 시체의 일생(Stiff―The Curious Lives of Human Cadavers)'에서 칼럼니스트 메리 로치는 시체에 대한 의학적인 조사는 물론 중국의 식인풍습, 영국에서 일어난 도굴, 미국 네바다주에서 일어난 시간(屍姦) 등 인간의 사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감각의 자연사(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로 유명한 다이앤 액커만의 1995년 저서 '사랑의 자연사(A Natural History of Love)'는 꾸준하게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랑이라는 잡히지 않는 개념을 향해 역사, 문학, 생물학, 대중문화 등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플라톤에게 사랑은 잘려나간 반쪽을 향한 열망이었던 반면, 현대의 과학자들에게 사랑은 옥시토신과 페닐레틸라민의 생화학적 작용인 것이다. 왜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에 그토록 집착했는지부터 사랑 때문에 거세당한 중세 신부 아벨라르의 안타까운 이야기까지, 러브스토리의 역사를 사려깊은 목소리로 되짚는다. 역사는 동의된 허구라고 하지 않던가. 생각지 못했던 주제들의 역사는 때로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소용돌이 속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박 상 미 재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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