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스캔들과 무수한 설화(舌禍)로 악명높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사진) 이탈리아 총리가 유럽의회에서 또 한번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베를루스코니 총리는 2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순번의장 취임연설에서 독일 사회민주당 출신의 마르틴 슐츠 의원을 나치협력자에 비유, 양국 간 외교적 파문을 촉발시켰다.
이달부터 6개월간 EU 의장직을 맡은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슐츠 의원이 자신의 부패의혹을 꼬집은 것에 대해 "이탈리아에서 나치 강제수용소를 다룬 영화가 제작 중인데 당신이 이 영화의 카포 역할에 완벽하게 어울리니 추천하고 싶다"고 독설을 뿜어냈다. 카포는 나치 친위대가 죄수나 집단수용소 수용자 중 다른 죄수들에 대한 감시역할을 맡긴 사람들이다.
앞서 슐츠 의원은 베를루스코니를 마피아에 비유하면서 "그가 이탈리아 내에서 벌인 이권다툼을 이제 전 유럽으로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베를루스코니의 나치 관련 발언 직후 독일―이탈리아 양국 외교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3일 "묵과할 수 없는 조롱이고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발언"이라며 "이탈리아 총리는 공식적으로 사과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앞서 나치 발언에 대한 사과나 철회를 거부하다 "독일 국민의 감정을 해칠 의도가 없었지만 본의 아니게 그런 부분이 있다면 사과한다"고 말했지만 슈뢰더 총리의 분노를 삭이지는 못했다. 이탈리아 정부도 로마 주재 독일 대사를 소환, 독일 의원이 이탈리아 수반에게 한 모욕적 발언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의회에서는 베를루스코니의 자질을 문제삼은 녹색당 계열 40여 명의 의원들이 "유럽에는 (마피아) 대부가 필요없다"는 피켓 등을 들며 무언의 시위를 벌여 한때 회의가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의 종잡을 수 없는 거친 입은 과거에도 한두번이 아니다. 지난해 덴마크 총리에게 자신의 부인과 염문을 뿌린 것으로 알려진 전 베네치아 시장보다 "아주 잘생겼다"며 부인에게 소개시켜 주겠다고 해 총리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2001년 12월에는 EU의 신설되는 식품안전기구 본부를 유치하려는 과정에서 경쟁국인 핀란드를 음식이름도 모르는 국민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하일라이트는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인 그해 9월 26일 독일 베를린에서 "이슬람 국가와 달리 인권과 복지를 보장하는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인식해야 한다"며 서구의 우월성을 강조, 파문을 불렀다. 그는 이슬람국가들의 사과요구에 "의미가 와전됐다"며 버티다 결국 사과했다. 지난달 말에는 "유럽으로의 불법난민을 단속하기 위해 이탈리아 군대를 리비아에 파병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나 리비아 정부는 "그런 합의를 한 적이 없다"고 해 국제적인 웃음을 샀다.
유럽 각국은 회원국 확대에 따른 EU 헌법을 완성하고 중동평화 로드맵을 추진해야 하는 중대한 시기에 각종 스캔들과 부패의혹을 받고 있는 그가 제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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