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개최되는 주요 서예대회 심사위원들이 뒷돈을 받고 제자의 작품을 대필(代筆)해 상을 타게 만드는 등 비리를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대필과 뒷돈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3일 서예대회 비리 관련자 24명을 적발, 한국서예협회 김모(61)이사장과 한국서가협회 전모(60)이사 등 심사위원과 출품자 5명에 대해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머지 19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개인 서실을 운영하던 김씨는 '대한민국 서예대전'을 주최하는 서예협회 이사장으로 1997년 취임한 뒤 지난해까지 제자 장모(50)씨 등 2명으로부터 530만원과 수차례의 향응을 제공받고 출품작을 대필해준 혐의다. 김씨는 또 매년 입상작에 대한 표구를 자신이 아는 박모(45)씨에게 맡긴 뒤, 작품당 3만∼5만원에 불과한 표구가격을 부풀려 입상자들로부터 작품당 9만∼15만원씩 받은 박씨로부터 4,100만원을 수수료 명목으로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전씨는 99년 9월 제자 김모(50)씨의 출품작 내용을 직접 수정하고 화제(畵題)를 대필한 뒤 출품토록 해 한국서가협회 주최 '대한민국 서예전람회'에서 입선하도록 하고 그 대가로 자신의 그림을 비싼 가격에 구매토록 하는 등의 방법으로 10여명으로부터 4,600여만원을 챙긴 혐의다.
반복되는 비리
경찰 조사결과 두 협회는 집행부와 친분이 있는 특정 작가만을 계속해서 심사위원으로 선정, 출품자들이 이들을 찾아가 부정한 방법으로 청탁한 뒤 입상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출품자들은 입상을 위해 아예 특정 심사위원 서실의 문하생이 되기도 했다. 93년에도 서예대전 심사위원들이 금품을 받고 작품을 대필한 사실이 검찰에 적발돼 협회 이사장 등 14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입선, 특선 등의 횟수에 따라 점수를 받는데 이 점수가 쌓이면 각종 서예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거나 문하생이 많은 학원 운영이 가능한 초대작가가 된다"며 "협회 집행부가 어떻게 하든 상을 많이 타 초대작가가 되려고 하는 출품자의 심리를 노려 '서예계의 고시'로 불리는 두 대회를 비리의 온상으로 변질시켰다"고 밝혔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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