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되던 노동계의 하투(夏鬪)는 철도파업 종결로 일단 진정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같다. 그러나 노사간의 갈등과 대립 구도는 해소되기 보다는 오히려 증폭되고 심화하는 느낌이다.대규모 독과점 사업장의 강성노조가 중심이 된 일련의 정치적 공세에 대해 사측은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각오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구책을 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는 노조말살 의도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사간에 건설적인 대화는 실종되고 상대방을 자극하는 극단적 언사가 빈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새 정부의 노동정책 혼선이 그 원인의 일단을 제공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노사문제의 자율적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의 중립적 입장 견지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는 출범 초기 친노동자 정책기조를 내비쳤다. 이것이 노사갈등의 자율 해결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노조의 기대수준을 높여 양측간 인식의 갭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법과 원칙이 강조되어야 할 사안과 대화와 타협이 우선되어야 하는 사안이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함에도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양자가 혼재되어 노사문제에 대한 정부의 신호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측면도 없지 않다.
이 같은 정책혼선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조만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큰 문제는 소모적이고 대립적인 우리 노사관계의 본질적 구도이며, 이것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정보화·세계화로 요약되는 경제환경의 변화는 대량생산 시대를 풍미했던 대결적 노사관계의 현실 정합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영미권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노사문화가 분배중시의 대립구도에서 분배를 위한 파이 창출에 협조하는 타협구도로 꾸준하게 바뀌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 국가는 이를 도모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모형과 전략을 동원했는데, 그 핵심기제는 사업장 수준에서의 근로자의 참여확대와 내부적 협력, 더 나아가서는 학습조직화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90년대 이후 이러한 환경 및 시대상황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노사관계 개혁이 중요한 국가과제로 추진되어 왔다. 그 결과 이제 우리의 노동법체계는 몇 가지 쟁점 부분이 남아 있지만 적어도 집단적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공무원의 단결권 보장문제를 제외하고는 국제기준에 크게 벗어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 노사관계 혁신은 하드웨어인 법과 제도의 개편도 일부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의식과 관행의 일대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의 협력적 노사모형을 정립하는데 있어 선진국들의 모델이 참고사항은 될 수 있다. 특히 산업민주화라는 사민주의적 가치와 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조화시킨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의 노사혁신 모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모형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우리와는 다른 그들 고유의 노사관계 구도 및 문화가 주요 배경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한국의 현실과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21세기 지식사회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한국적 노사합작모형을 모색하고 구축해나가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용자들의 자기혁신과 기업의 투명성 강화가 선결되어야 한다. 노조운동도 조합원들의 권익옹호 뿐만 아니라 근로능력개발과 국민경제를 동시에 고려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정부는 법치주의 관행의 정립과 동시에 다양한 노사관계의 인프라 구축에 역량과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여기에는 노사관계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투자도 비중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노사관계의 혁신을 위한 투자는 국가발전전략의 핵심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김 장 호 숙명여대 교수·경제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