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무엇인가? 우리말에서 '집'은 영어의 '하우스' 또는 '홈'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하우스'는 물리적인 환경을 나타내는 반면, '홈'은 가족과의 사랑, 기쁨, 슬픔 등 생활의 모든 순간과 감정이 스며있는 정서적 측면에서의 집을 말한다. 우리말에서 '집'은 이 두 개념을 분리하지 않고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이제 '홈'의 개념은 점차 상실되고 있다.불과 30년 전만해도 '집'이라는 곳은 인생의 생로병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태어나는 아이는 집안의 방을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접하였다. 나이 들어 죽음을 맞이할 때도 안방은 이 세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생의 마지막 장소였고, 대청과 마당은 집안 경조사의 역사를 담는 공간이었다. 집은 기나긴 일생의 순간들이 모두 담겨있는 곳이었으며, 그 곳은 바로 사는 사람의 내면세계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집은 더 이상 그런 의미 있는 장소가 아니다. 집은 대량 생산되고,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집의 모습으로 그 사람의 현재를 표현하지만, 그 집에 길고 깊은 인생 이야기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 아이들은 병원에서 이 세상을 가장 먼저 접한다. 크면서 낮 동안은 학교와 학원에서 지내고,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집에서는 잠깐 잠만 잔다. 집안 가장은 일터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집 밖에서 사교의 시간을 보낸다. 주부들 사이에, 낮에 집에 있는 사람은 성격이 좋지 않아 친구가 없거나, 건강이 좋지 않아 쉬는 사람이라는 우스개 말이 오갈 정도로 집은 생활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가정의 특별한 의식도 이제는 모두 집 밖에서 이루어진다. 돌잔치나 회갑연은 음식점에서 치르고 죽음의 마지막 순간은 병원에서 맞이한다. 이처럼 집은 삶의 정서를 잃어가며, 쓰다가 때가 되면 바꾸는 가전제품처럼 의미가 축소되어 가고 있다. 더욱이 기회가 되면 팔아 넘겨 버릴 수 있는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만 그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물리적 집은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집은 부재한다. 이는 개인의 뿌리와 역사, 그리고 정체성의 상실을 초래하게 된다. 더 나아가 가치관의 몰락과 존재의 불확실성으로 연결되어 혼돈과 불안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요즘 우리나라의 집단 가치관이 흔들리고, 미래 사회의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불안해 하는 현상도 개개인의 '홈'의 상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집'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집이라는 환경과 연결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차분히 되돌아 볼 수 있을 때야 비로소 터무니없이 높게 거래되는 아파트 가격도 바로 잡히게 될 것이다.
김 혜 정 명지대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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