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현대로부터 받은 양도성예금증서(CD) 150억원을 돈세탁했다고 특별검사팀이 밝힌 김영완(50)씨가 명동 일대의 사채업자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사채시장 동향을 파악한 정황이 드러났다.이는 김씨가 채권이나 CD의 매물 현황, 가격 흐름 등 돈세탁에 이용되는 각종 정보를 직접 챙기며 '검은 돈' 세탁을 진두지휘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 김씨가 채권 회수에 혈안이었다는 증거가 속속 확인되면서 강탈 당한 100억원에 가까운 채권 성격을 둘러싼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김영완씨, 신분 철저히 감춰
명동 사채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사채업자는 2일 "4∼5년 전 한 사채업자의 소개로 무역업자라는 김영완씨를 처음 봤다"며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사채시장 정보가 주로 유통되는 명동 R호텔과 U빌딩 인근에서 만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춰 명동 일대에서 활동 중인 300여명의 사채업자 사이에서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이 인사는 "대형 사채업체에는 전주(錢主)가 3∼5명씩 있는데 김씨도 이런 전주 중 한명으로 알려졌을 뿐, 신분을 철저히 감춰 일부 사채업자들만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사채업체 관계자는 "사채시장 정보를 확인한 전주들은 대부분 누군가를 시켜 채권, CD 등을 사고 팔아 현금화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돈세탁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김씨가 150억원어치의 CD 가운데 일부를 현금화한 뒤 자신의 측근을 시켜 명동의 S상사에서 10억원 짜리 채권을 산 사실이 밝혀져 돈세탁 의혹이 제기됐었다.
의혹 커지는 채권 회수 노력
김씨의 강탈 채권 회수 방식도 의문이다. 그는 특히 즉시 현금화가 가능해 오히려 회수를 서둘러야 할 50억원대의 증권금융채권 보다 최초 구입자와 최종 환매자의 신원이 드러나 자금 추적이 가능한 국민주택채권 회수를 위해 더 노력했다. 강탈 당한 39억6,110만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 443장에 대해서는 사건 발생 사흘 만인 지난해 4월3일 증권 당국에 사고 신고를 했지만, 증권금융채권의 경우 그 보다 한달 뒤인 5월이 돼서야 서대문경찰서에서 강도 피해신고 확인원을 받았다. 자금 출처가 밝혀질 가능성이 큰 국민주택채권에 대한 회수를 더 서둘렀던 것이다. 채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경찰이 범인 검거보다 채권 원본 회수에 더 주력했다는 정황까지 감안하면 김씨의 채권 구입자금은 '검은 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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