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반가운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마는 장마철을 맞은 기상예보관처럼 24시간 내내 긴장해야 하는 사람도 없다.연세대 대기과학과 박사 출신으로 기상청 근무 15년째인 최치영(47) 총괄기상예보관은 지난달 15일부터 시작된 4개월간의 방재근무에 돌입했다. 1년 재해의 90%가 이 기간에 발생하므로 매일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장마가 시작되고서부터는 식사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다. 여기에 호우주의보가 전국토의 3분의2에 내려지거나 태풍이 들이닥치면 비상근무까지 겹친다.
그러니 그에게 비는 낭만과도 우울과도 거리가 멀다. 그저 재해일 뿐이다. "지형이 험준하고 해안이 많은 우리나라는 기상이변이 많습니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어딘가는 많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지역별로 심하면 시간당 50㎜씩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5교대로 일하는 최 예보관이 하는 일은 비가 왜, 언제, 어디서, 얼마나 올 것인가를 예측하는 일이다. 앞 조 예보관이 예측한 것을 토대로 다음 조 예보관에게 진행상황을 정확히 알려주어야 한다. 3년 전 슈퍼컴이 도입되어 일하기가 한결 편해졌지만 자료를 분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상청의 꽃'인 총괄예보관의 몫이다.
간혹 기상이 컴퓨터의 예측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태풍 루사 때가 그랬다. 태풍의 진로는 예측을 했으나 하루 사이에 900㎜ 장대비가 내릴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이 비는 도대체 뭔가 싶더라구요. 식은 땀 줄줄 흘리면서 제발 그치기만 빌었죠."
최 예보관을 정작 힘들게 하는 것은 비보다 사람들이다. 인터넷 기상정보가 서비스되면서 많이 줄기는 했지만 기상청으로 여전히 많은 전화가 걸려온다. 대부분은 항의전화다. "모두들 기상 예보관은 점쟁이인줄 알아요. 맞으면 당연하고 틀리면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리죠. 같은 예측 정보인데도 주가 진단이나 의사의 진단이 틀리면 가만히 있으면서 유독 날씨에는 비난이 쏟아집니다." 해마다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을 그는 "기상예보는 맞냐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재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의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특보를 낸 덕분에 물 난리와 인명 피해를 막았을 때가 그렇다. 고맙다고 표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비에 가슴 졸이고 예보하며 진땀을 흘려본 예보관들끼리는 서로를 인정한다. 사석에서는 날씨 얘기 절대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맥주 한잔 기울인 끝에는 꼭 날씨 걱정이 따라 붙는 게 예보관들이다.
최 예보관은 이번 여름도 그냥 지나가지는 못하리라 생각한다. 재해가 전혀 없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는 봄 가뭄이 없어 물이 꽉 차있는 상태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없다. 가물면 가문대로 고생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사나흘 맑고 비 한번 뿌려주는 것이 그가 바라는 이상적인 날씨지만 하늘이 인간의 뜻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은 오래 전에 깨쳤다. "그저 최선을 다해 내다보는 수밖에요. 자연 재해는 어쩔 수 없지만 인재만큼은 없는 여름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아무리 비가 많이 온다고 예보를 해도 괜찮겠지하고 야영을 나서는 사람들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글=김지영기자 koshaq@hk.co.kr
사진=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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