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노조라는 비판을 받아온 정부가 재계 끌어안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철도파업에 초강경 대처하는 등 무리한 노조 요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가 하면 1일에는 경제5단체장을 초청, 오찬을 가진 김진표 부총리는 재계 요구사항을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유화적 자세를 보였다.
청와대는 나아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제기한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8·15 경축사에서 새 국정아젠다로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기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패러다임이 성장 중심으로 수정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재계 끌어안기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이날 정·재계 간담회를 개최한 것은 그동안 소원해졌던 재계와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 김 부총리는 재계의 적극적 투자를 호소하며 "재계의 요구를 경제운용계획에 반영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정부로서도 경기침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재계의 자발적 투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부동산시장이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가운데 쉽사리 금리를 인하할 수도 없고 정권 첫해부터 적자재정을 감수, 추경증액이나 2차추경을 짤 수도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최근 연이은 노조 파업과정에서 재계는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겠다"며 정부를 압박하면서 대국민적 입지를 강화해왔다.
이날 재계는 출자총액제한제, 동일인 여신한도 등 참여정부의 시장개혁 핵심규제 완화를 요청하는 한편, 청와대가 내키지 않아 했던 법인세율 인하도 또다시 요구했다. 또 노동자 해고요건 완화, 근로자파견제도 개선 등 노사간 민감한 문제도 주문했다. 정부도 이 같은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책기조도 선회하나
청와대는 나아가 '2만달러 달성'을 새로운 국정목표로 설정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참여정부 경제비전 국제회의'에서 "국민소득이 8년째 1만달러에 머물러 있다"며 "2만달러 시대를 하루속히 열어 선진국 문턱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5∼10년후의 비전확보를 위해 기술혁신 시장개혁 문화혁신 등 5대 성장전략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2만달러 아젠다는 당초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제시한 것. 재계 논리를 국정아젠다로 삼겠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으로 정부와 청와대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경제가 이대로 있다간 남미형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발상이지만, 청와대 한 관계자는 "한국경제에서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시기가 아니라, 개혁·개방에서 상당한 성과를 일군 시기"라며 "참여정부 패러다임과도 맞지 않고, 달성 가능성도 희박한 아젠다로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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