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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 경북 영주 소수서원의 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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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 경북 영주 소수서원의 소나무숲

입력
2003.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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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산림정책사를 연구하면서 머리 속에 떠나지 않는 물음을 하나 갖게 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조선시대 산림정책은 곧 소나무정책(松政)이었다. 산림 관련 규칙은 대부분 소나무 벌채를 금지하는 송금(松禁)이 목적이었으며, 마을 스스로가 산림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규약 역시 금송계(禁松契) 형식을 띠었다. 이런 까닭에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우리나라의 산림정책은 오직 송금 한 가지 조목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선조들은, 아니 최소한 당시 지배층은 소나무를 왜 그렇게 중요시했을까?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은 그 만큼 소나무의 쓰임새가 많았다는 것이다. 숙종 때 조선후기 대표적인 산림관리정책인 봉산제도를 신설하면서 국가에는 큰 정책이 있는데 소나무정책이 그 하나다. 위로는 궁궐의 건축자재를 대비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생활물자를 이바지하기 위한 것으로 그 쓰임새가 지대하기 때문에 송금이 지극히 엄한 것이다'라고 송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하여 당시 배를 건조하고 궁궐을 짓고 관을 만드는 자재로 쓰일 목재가 소나무밖에 없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쓰임새의 장점과 함께 소나무를 나무의 으뜸으로 인식한 유교적 관념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성리학을 숭상했던 사대부는 백두산을 여러 산 가운데 조종(祖宗)으로 여겼듯이 사시사철 변함없이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를 나무의 으뜸으로 인식했다. 옛 선비들의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낙락장송'이나 '세한송(歲寒松)'은 선비들이 추구하는 삶을 소나무에 빗대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성리학을 국가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시대 위정자들의 소나무 중시 관념성에 전국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보편성과 목재의 유용성이 더해져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소나무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의 '소나무숲'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관념성이 투영된 숲이다. 알려진 대로 소수서원은 신재 주세붕이 풍기군수를 역임할 때 고려 유학자인 회헌 안향을 흠모하여 설립한 백운동서원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임금께 서원의 합법적인 인정을 요구하였고, 명종이 이를 받아들여 손수 '소수서원'(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한다는 旣廢之學 紹而修之에서 소수(紹修)라는 이름을 따왔다)이라고 쓴 편액(扁額)을 하사함으로써 국가의 공식 인정을 받은 최초의 서원이 되었다. 이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도 살아남은 47개소 중 하나로, 현재 사적 제55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조선시대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 임금이 편액을 하사한 서원)인 소수서원의 숲만들기는 당연히 유교적 관념을 강하게 반영했다. 우선 서원 입구에 터잡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눈에 띤다. 소수서원이 걸어온 길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한 500여년 된 은행나무는 공자의 학문을 추구하는 서원의 문패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또한 어떠한 회유와 시련에도 변함없는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 계절의 변화에도 변함없는 소나무를 심어 교육의 자료로 활용하였다. 소수서원 입구에 2㏊ 남짓하게 자리잡은 '소나무숲'은 원생들이 오가며 선비 정신을 깨닫도록 조성된 '선비나무'며 '학자나무'라 할 수 있다. 소나무 단순림으로 조성된 이 숲은 수령이 100∼500년에 이르는 노거수로, 서원의 왼쪽 언덕을 자연스럽게 감싸고 있다.

요즘 학교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주변 환경을 숲으로 바꾸려는 '학교숲 만들기' 운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는 숲 그 자체가 배움의 터전이라는 진리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배재수·임업연구원박사 forestory@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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