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가 불황 국면에 접어 들고 주식시장의 버블이 꺼지면서 미 경영학석사과정(MBA)에 대한 환상은 깨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MBA는 매력적이다. 억대 연봉의 신화는 사라졌지만 여러 분야의 전문가나 중간경영자 등이 경영능력을 높이고 국제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키우기 위해 MBA로 가고 있다. MBA전문학원으로 포털사이트(www.mba.co.kr)를 운영하고 있는 JCMBA의 회원수도 이런 현실주의파 MBA 지망생 덕분에 2001년 3만2,000명에서 지난해 4만2,000명으로 급증했다. 정병찬 대표는 "과거와는 목적이 변했지만 국내 학생들의 MBA지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며 "그러나 각 학교에서 선발하는 외국 학생은 쿼터제로 한정되어 있어 경쟁률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실속파 유학이 주류
최근의 MBA붐은 2∼3년 전의 '바람'과는 분명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역삼동 GMAT어학원 이호익 원장은 "MBA 자체가 목표였던 과거 지원자들과는 다르게 현재 자신의 일을 더욱 잘하는 것이 동기가 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과거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MBA 준비에만 매달렸지만 요즘에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이 학원에서 MBA를 위해 영어시험인 GMAT를 공부하고 있는 수강생들도 회사를 그만두고 MBA에 매달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 주말 수강반이 엄청나게 붐빈다.
MBA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MBA 졸업생 가운데 억대연봉 신화를 실현하는 사람은 이제 100분의 1도 안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명문 경영대학원으로 꼽히는 미 켈로그를 나왔지만 국내에서의 재취업에도 실패, 이전 직장에 한 직급 높은 자리에 그대로 들어간 경우를 비롯해 실패 사례는 부지기수다. 2년이라는 기간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 대도시로 갈 경우 2억원 가까운 돈을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본전도 못 건진 셈이다. 한 관계자는 "미국의 불황이 장기화화면서 컨설팅이나 투자은행 등 MBA출신들이 선호하는 직장이 채용인원수를 많이 줄였다. 그 틈을 한국인이 뚫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전한다.
억대 연봉의 환상을 메우는 것은 국제감각과 의사결정능력이다. 중견 직장인부터 의사 디자이너 PD 등 전문직의 MBA도전이 부쩍 늘었다. 1일 미국으로 출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한 의사 배지수(33)씨는 대학병원 레지던트 과정을 밟으며 MBA를 준비했다. 그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역량과 수완을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졸업후에는 병원이나 제약회사, 의료관련 회사 등의 경영에 종사할 계획이다.
흔히 MBA를 준비하면 으레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나 파이낸셜 타임즈 등에서 발표하는 '미 명문 TOP20 경영대학원'을 목표로 하겠지만 최근에는 유럽 등에 눈을 돌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과정이 1년∼1년 반으로 미국보다 짧은 데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인시아드(INSEAD), 스위스의 국제경영대학원(IMD) 영국의 런던경영대학원(LBS) 등이 유럽의 대표적인 명문 경영대학원으로 꼽힌다.
삼성물산에서 3년6개월을 근무하다 2000년 프랑스 INSEAD를 졸업, 현재 프랑스 패션그룹 LVMH 산하의 크리스찬 디오르 한국지사에서 면세영업을 총괄하고 있는 김주한(34)씨는 '유럽파 MBA'의 선구자격. 그는 "2, 3년 전에는 INSEAD에 한국인이 전혀 없었지만, 최근 매년 4, 5명씩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며 "1년 과정이라 빨리 배우고, 빨리 취업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5월 워튼 경영대학원을 졸업, 존슨 앤 존슨 본사에 취업해 8월 말 미 뉴저지로 출국하는 차마리(34)씨는 약사 경력을 살려 처음부터 제약업계를 목표로 잡았고, 이 방면의 네트워크와 정보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취업 제의가 온 8개 회사의 조건을 면밀히 검토해 지사장급의 연봉과 취업조건을 획득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서 취업하더라도 과거처럼 무작정 투자은행이나 컨설팅 업체를 지향하는 대신, 이처럼 경력을 살려 합리적인 취업을 하는 것이 새로운 경향이다.
/양은경 기자 key@hk.co.kr
인 터 뷰/"MBA정글에서 살아남기" 저자 이 철 민
MBA 준비생들이 최근 많이 들춰보는 책은 '진학'보다는 '취업'에 관한 것이다. 이제는 '명문 MBA입학=성공'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취업과정의 험난함을 차츰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취업 경험담을 진솔하게 담은 'MBA정글에서 살아남기'(이철민 저·매일경제신문사 2003년 4월 발간)도 그중 하나다.
저자 이철민(사진)씨는 국내 정보통신기업들에서 신사업과 서비스기획 업무를 담당하다 1999년 미 듀크대 MBA과정을 거쳐 현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입사,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지원자들이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며 MBA에 대한 환상을 경계한다.
취업은 MBA의 목표다. 세계적인 회사들과 진땀나는 인터뷰 과정을 거쳐야 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해당 회사의 인사담당자에게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지를 설득할 수 있는 유창한 영어실력이다.
이씨는 "9월에 입학할 경우 다음해 1월부터 기업들과 인터뷰를 한다. 적응하기도 바쁜 4개월간 인터뷰 준비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잠 잘 틈도 없다"고 말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외국인을 고용하면 별도의 비자유지비용까지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불경기하에서는 잘 뽑지 않는다. 게다가 인터뷰 과정에서도 매일 미국경기를 실물로 접하는 현지인들과 회사나 산업에 대한 이해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씨는 "신문과 각종 자료를 매일 읽고, CEO와 회사에 대해 완벽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씨는 섬머 인턴(1학년을 마친 후 갖는 취업기회)에서 6개 회사의 제의를 받았고, 이때 일했던 BCG에서 풀타임 인터뷰제의가 들어와 취업에 성공했다.
듀크대 재학시절, 이씨는 한국인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는 대신 한국계 미국인이나 필리핀계 미국인 등과 스터디팀을 만들어 인터뷰때 나올 케이스 문제 등을 준비했다. 이씨는 "폭넓은 다국적 네트워크야말로 취업의 성공비결이자 MBA의 또다른 목표"라고 말했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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