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신밧드의 모험을 다룬 애니메이션 '신밧드'에 무슨 여성이냐고? 세계에 혼란을 가져오는 것도, 세계에 희망을 안겨 주는 것도 여성이다. '슈렉'(2001)을 제작했던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젠버그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밧드에 매혹적이면서도 지혜롭고 용기 있는 여성상을 끼워넣어 새로운 신밧드 이야기를 만들었다.스크린을 뚫고 객석을 덮칠듯한 파도와 초대형 괴물들을 물리치는 장쾌한 스펙터클은 물론 설산에서의 호쾌한 미끄럼타기의 시원함은 역시 드림웍스답다. 제작비 6,000만 달러를 들였고 할리우드 스타를 총동원해 목소리를 잡았다.
줄거리는 목숨을 건 우정의 미담으로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 전설 '다몬과 피시아스'를 변용한 것이다. 신밧드(브래드 피트)는 옛 친구인 시라큐스의 왕자 프로테우스(조셉 파인즈)의 배를 노략질하다가 세계의 평화를 지킬 '평화의 책'을 본 뒤 그 화려함의 극치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한발 앞서 혼돈의 여신 에리스(미셸 파이퍼)가 그 책을 훔치고, 신밧드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 '평화의 책'을 안전하게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던 프로테우스는 신밧드의 결백을 믿고 대신 감옥행을 택한다. 신밧드가 책을 다시 찾아오면 그는 풀려날 것이다. 그러나 신밧드와 책 모두가 함께 돌아오지 않으면 프로테우스는 죽을 것이다. 이 곤경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은 프로테우스의 약혼녀 마리나(캐서린 제타 존스)다. 그녀의 대담성과 기지가 어떻게 신밧드를 변화시키느냐가 영화의 재미다.
그러나 바그다드의 영웅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의식적 회피였을까. 신밧드는 오디세우스에 가깝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선원들을 유혹해 배를 난파시키는 요정 사이렌과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의 변형인 거대한 물고기의 공격을 용케 피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오디세우스다. 이름만 해도 그렇다. 에리스 여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과 불화의 여신이며, 프로테우스도 역시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바다의 신(또는 이집트의 왕)이다. 평화의 도시 시라큐스는 뉴욕 남쪽의 도시 이름이자 고대 그리스의 도시 시라쿠사를 뜻한다.
7대양을 돌아다니며 온갖 모험을 겪은 끝에 바그다드의 부호가 되는 신밧드는 사라지고 의리와 모험심 강한, 이름만 신밧드인 서양식 영웅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랍인 신밧드의 환상적 모험을 백인의 그리스 신화 재현으로 바꾼 이 작품을 본 뒤 어린이들이 신밧드를 그리스 신화의 영웅 정도로 알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과도한 서구중심적 신밧드의 이미지에 대한 해독제로 등장하는 것이 전지전능하면서도 매력적인 여신 에리스와 용감한 여성 마리나다. 특히 마리나는 탐욕스러운 해적에 불과한 신밧드를 의리와 용기의 화신으로 일으켜 세우는 진정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마리나가 내린 마지막 결정은 모호하다. 신밧드와 함께 해적선을 탄 그녀가 앞으로 신밧드와 함께 노략질에 나설 것인지, 거친 해적들의 세계에서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영화는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혁신적 정치성과 독창적 패러디로 새 길을 열었던 '슈렉'보다 내용에서 뒷걸음질 치고 끝내기 솜씨에서 한 수 아래라는 평가는 여기에서 나온다. 'Sinbad― Legend Of The Seven Seas'. 11일 개봉. 전체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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