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당권경쟁이 최병렬 의원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로써 이회창 체제 이후 계속되어온 한나라당의 과도체제가 끝이 나고 본격적인 포스트 이회창 체제가 막을 올린 것이다.한나라당의 이번 경선은 한국정치사상 최대 규모인 22만명의 대의원들과 당원들을 선거인단으로 참여시킨 역사적인 경선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규모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경선은 국민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흥행에 실패했고 다시 한번 한나라당의 인물난을 보여주고 말았다. 특히 전체 선거인단 중 20대의 비율이 1% 대로 나타나 이를 정정하느라고 난리가 났던 소동이 보여주듯이, 낡고 늙은 노인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한 진취적인 정당이라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또 지난 대선 패배와 관련해 뼈를 깎는 자기개혁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경선과정에서 일부 후보가 총선에서 승리를 위해 이회창 전 총재를 모셔 오겠다고 약속하고 나선 것은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당의 미래를 좌우할 이번 경선이 자기변신의 기회가 되지 못하고 이같이 흐른 것의 일등공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이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다시 한번 한나라당이 패배하고 이회창 후보가 정계은퇴를 선언할 때만 해도 한나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의 얼굴에서 무언가 혁명적인 자기변신과 내부 개혁을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노무현 정부가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처럼 강력한 초기 개혁 드라이브를 치고 나가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면 이 같은 절박함은 더욱 심화해 한나라당이 혁명적인 개혁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즉, 참여정부가 여러 정책 의제에 있어서 개혁적이기 보다는 현실주의적 입장에 안주해 버리고 노 대통령의 좌충우돌식 발언 등으로 국민들이 불안해 하고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강곡선을 그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에 의해 4·23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고 한나라당이 승리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러자 대선 패배의 절박함과 개혁의지가 한나라당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 김대중 정부 시절처럼 특별하게 잘할 필요가 없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실수와 잘못에 대한 반사이익만으로도 정국의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됨으로써 현실에 안주해 버리고 만 것이다.
내년 총선만 해도 그렇다. 물론 내년 총선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고 신당 움직임 등 새로운 변수는 아직도 무수히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신주류 중심의 개혁신당 움직임이 첫 단추를 잘못 꿰어 국민적 지지를 얻어 내는데 실패했고, 민주당의 분당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특검문제와 대북정책 등과 관련해 호남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고 참여정부의 지지율이 예상 밖으로 저조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다음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사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혁명적인 자기개혁을 하지 않는 한, 다음 대선에서 다시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최근의 노무현 정부가 개혁드라이브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을 안심시켜 자기 개혁의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다음 대선에서 다시 패배시키기 위한 노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전략에 의한 것이 아닌가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든다.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의 실정에 의존하는 반사이익의 정치에 의존한 채 혁명적인 자기개혁을 하지 않는 한 한나라당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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