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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경찰기자? 기자경찰? 서울경찰청 이동환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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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경찰기자? 기자경찰? 서울경찰청 이동환 경감

입력
2003.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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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란 게 본디 남 얘기를 주로 하는 직업이다 보니 정작 제 얘기 할 기회는 별로 없는 법이다. 상처 난 곳을 들추어 내는 게 주업이니 만큼 그 과정에서 겪는 애환 따위는 오히려 다른 어느 직업보다도 많은데도. 서울경찰청 이동환(李東桓·40) 경감은 취재를 '빙자'해 그런 얘기를 나누기가 딱 좋은 사람이다. 현직 경찰관이자 인터넷 매체에 기사를 쓰는 기자이기도 하니까. 원래 신문사에는 '경찰기자'가 있다. 주 취재처를 경찰로 삼아 주변의 온갖 사건을 다루는 가장 혈기왕성한 기자들이다. 말 그대로라면 오히려 이 경감이 진짜 경찰기자인 셈이다. 아니 정확히는 '기자경찰'인가? 아무튼 그는 웬만한 기자들의 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고집스럽고, 다루기 힘들고, 감추고 싶은 걸 꼬치꼬치 들추어내 문제삼고…. 한 마디로 성가시지만 또 없어서는 안될 존재, 애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보물이기도 한 존재, 경찰 안팎에서 보는 이 경감의 이미지가 딱 그렇다."글쎄, 워낙 파격적인 사람이어서…." "또 뭔 얘기를 할 지." 이동환 경감을 만난다고 했더니 역시 여러 경찰간부가 난감해 했다. 사실 그는 여러 차례 필설(筆舌)로 화(禍)를 당한 적이 있다.(본인이야 할 소리를 한 것이니 화로 여기지도 않지만) 그러면서도 다들 그가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 수재형"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확실히 그는 경찰간부로서는 전례가 드문 '이단아'다. 대중매체에 기자로서 글을 올린다는 것부터 그렇거니와, 상당 기사가 제 조직을 가차없이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사조직에서도 그러기 힘든 데 하물며 위계 엄격하고 보수적인 경찰조직 임에랴. 3년여 전부터 그가 인터넷 신문에 쓴 기사제목 몇을 보자.

― 스스로 인권경찰 되기 (경찰관 홈페이지 인권강좌, 인권활동 동호회 활성화)

― 검찰은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는 제도개선을 하라

―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경찰은 이제 시위현장에서 물러나야)

― 초록빛 바다 속의 차돌처럼 살아가리라 (경찰개혁 외치다 파면된 차재복씨)

― 경찰의 친절봉사 이대로 좋은가

최고지휘관을 포함, 경찰 스스로에 대한 신랄한 문제제기서부터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검찰에 대한 정면 도전까지 좌충우돌이다. 글에는 '경찰의 권력남용' '독재정권의 시녀' '수구세력의 비호세력' 등의 '위험한' 용어까지 거침없이 등장한다. 경찰의 금기(禁忌)였던 기성 언론사 보도태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그는 실제로 TV의 경찰 파업음주진압 보도와 모 신문 여기자와 여경과의 다툼 등과 관련, 해당 언론사와 싸움을 벌인 적이 여러 번 있다)

그의 튀는 자질은 이미 경찰대학(4기·1984년 입교) 시절부터 일찌감치 싹을 보였다. 첫 직선 학생회장을 하면서 담배 피우다 적발된 동기생이 징계받게 되자 학교와 담판을 지어 금연, 금주 학칙을 바꿨다. "지나치게 엄격한 규정은 현실성이 없고 오히려 범법자(위반자)나 위선자를 양산할 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 공인된 '트러블 메이커'로서 이후 그가 일으킨 트러블이란 것도 다 이 신념과 일관된 맥락이 닿아있다.

'기자'로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경찰대학 학보사 때부터다. 임용 후에는 '경우신보(警友新報)'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당시에도 경찰제복 개선과 관련, 서울청장 때 사인을 다 해놓고는 경찰청장이 돼서 이것저것 원칙을 허문 P청장을 상대로 '청장님 그 때 어디 있었습니까'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새까만 초급간부가 공개적으로 현직 경찰총수를 면박 준 이 일로 그 때도 경찰이 발칵 뒤집어졌다.

가장 큰 논란이 됐던 건 재작년 4월 인터넷 매체에 올렸던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었다. 서울청 과학수사실장으로 있을 때였다. 대우자동차 폭력진압으로 인한 이무영(李茂榮) 청장의 퇴진논란, 경찰대 동문회 성명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근본적인 시위대처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 마디로 '집회 시위는 인권과 직결되는 헌법적 권리인 만큼 공권력 투입이 남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정작 문제는 '공무원이 비록 인터넷 언론이라 할지라도 기자를 겸직할 수 있느냐'는 쪽으로 비화했다. (여기서 '아하, 그 당사자였구나'하고 기억할 이가 꽤 있을 것이다)

업무에서도 그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 따위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스물 다섯 초임 파출소장 때였어요. 예산배정도 없이 파출소를 단장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직원들이 업소 등을 다니며 동냥하듯 5,000원, 1만원씩 경비를 걷는 걸 보니 눈물이 나더군요. 당장 그만두라고 했지요. 잘못된 틀 속에서 제대로 하기를 요구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일선의 불합리한 인사고과 제도를 고치려 무진 애도 써봤다. 심지어 직원들에게 개인실적'통장'까지 만들어 지급했다. "딱지 100장 끊는 것보다 절도범 하나 잡는 게 더 중요한 실적으로 평가돼야 합니다." 담배꽁초 단속으로 실적을 올려오던 직원도 그 밑에서 무서운 '포돌이'로 바뀌었다. "그러나 잦은 이동에 전화 한 통화로 간단하게 인사가 바뀌는 구조에서는 뿌리 내리기가 불가능했지요."

달걀로 바위치기 같은 그의 시도가 빛을 본 것도 있다. 전문분야가 되다시피한 집회·시위 대응방식에서다. (현 직책도 서울경찰청 경비부 경비반장이다. 그는 고생스런 기동대에서 가장 긴 경력을 쌓았다. 허구한 날 입바른 소리만 해댄 탓이다) 5월부터 공식 시행된 '자율적 집회·시위 보호지침'이 바로 그 것. 신고 집회는 교통경찰과 여경 폴리스라인으로만 대처하되 주최측의 자율적 집회진행을 원칙으로 하는 방식이다. 그가 이무영 전 경찰청장에게 보낸 공개서한 이후 주장해온 그것이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 정신을 떠나 현실적으로 경찰이 방패를 바짝 들이대는 것 자체가 곧장 시위대의 폭력을 유발한다는 게 그의 오랜 경험칙이다.

"올 봄까지 1년8개월 동안 3기동대 35중대를 맡으면서 독자적으로 폴리스라인 뒤 5m 쯤에 일반 경찰복을 입힌 대원들을 세웠습니다. 진압부대는 뒤로 돌렸지요. 겁내는 대원들을 '위해를 당하면 내가 책임진다'며 달랬습니다. 폴리스라인이 침범 당하거나 고소, 인권시비에 휘말리는 일이 우리 중대에서는 한건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시위자가 폭력을 휘두르면 위법 행위를 했음을 알리고 체포하거나, 사진으로 찍은 증거를 통해 추후 검거한다. 그의 부대는 '약식 미란다원칙' 고지방법도 교육 받았다. "아저씨 때렸죠? 체포합니다. 할말 있습니까? 돈 있으면 변호사 사십시오."

그를 아는 일부 시민단체 지도부는 현장에서 맞닥뜨리면 스스로 질서 유지에 나서거나 폭력시위용품을 자체검색하기도 한단다. "물론 마음먹고 사단(事端)을 일으키려 하는 시위자들도 있습니다. 또 지난 번 북파공작원 시위처럼 이런 대비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요. 쉽지는 않습니다."

이 경감은 영화를 만든 적도 있다. 서울경찰청에서 기획 일을 맡고있을 때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감독 등 스태프를 구해 경찰 홍보영화 제작을 총지휘했다. 그 때도 상사와 티격태격했다. 보름간 범인을 쫓던 형사가 결국 허탕을 치고 고개를 떨구는 장면 등이 문제가 된 것. "아니, 홍보영화라면서 그렇게 맥 빠진 모습을 담으면 어떻게 해." "국민을 공감시키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결국 30분짜리 영화는 그의 뜻대로 완성됐다. "요즘 영화 '살인의 추억' 같은 데서는 진짜 경찰의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까? 제 영화가 원조지요."

그의 거침없는 궤적을 쫓다보면 경찰대학의 엘리트 출신인 그의 승진이 왜 7∼8년이나 늦었는지를 수긍케 된다. 가장 빠른 동기생은 이제 곧 총경 계급을 달 참이다. "승진에는 별 관심 없습니다. 제 아이들이 컸을 때 접하게 될 경찰의 모습에만 관심이 있지요."

― 그래도 지위가 높아질수록 개혁작업이 쉬워지지 않나.

"승진을 위해 타협하다 보면 결국 물이 들게 됩니다."

― 그럼 경찰을 선택한 이유는.

"재수할 때 할아버지가 시험 보라고 해서요."

― 주위에서 부르는 별명 같은 게 있을 법한데.

"'강가딘' 알지요? 김삼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강아지…. 한번 물면 끝장보는 놈이지요."

그는 이런 식이었다. 질문을 하면 직설적인 답변이 곧바로 튀어 나왔다. 인터뷰 중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을 뿐더러 말을 포장하려 들지도 않았다. 과연 '싸움닭' 같은 경찰기자다웠다.

사실 이 경감이 쓰는 기사는 정통 취재기사라기 보다는 직설적 주장에 가까운 것이 많다. 특정 사안을 깊숙이 다룰 때는 소논문이 되기도 한다. 그는 이런 기사를 쓰기 위해 나름대로 철저한 취재와 확인,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기사 하나를 쓰는 데 길게는 열흘까지도 공을 들인다. (물론 오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 기자들도 그러하듯)

"만원버스에서는 차 움직임에 따라 승객들이 이리저리 쏠리지 않습니까? 그 때 중간에서 힘주어 버텨주는 승객이 있습니다. 그런 이가 없다면 모두 넘어지게 되지요. 그게 바로 제 역할입니다." 그건 기자인 그가 언론 전체에 하는 주문이기도 했다.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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