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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39>레옹 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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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39>레옹 도데

입력
2003.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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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6월30일 프랑스 작가 레옹 도데가 75세로 죽었다. 레옹 도데는 '마지막 수업' '별' 같은 작품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맏아들이다. 의학을 공부하다가 저널리즘으로 방향을 바꾼 뒤, '르피가로'를 비롯한 우익 신문들에 기고하며 반(反)유대주의 논객으로 이름을 떨쳤다. 유대인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군부의 모략으로 독일 간첩으로 몰리며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이른바 드레퓌스 사건에서도 반드레퓌스 편에 섰다.아들 도데는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도데의 고향인 남프랑스 사람들에게 흔한 다혈질을 지니고 있었고, 서정적 섬세함으로 산문을 쓴 아버지와 달리 자신의 글을 통렬한 풍자의 칼날로 채웠다. 아버지만큼이나 다작이었지만 관심 분야는 훨씬 넓어서 소설만이 아니라 의학론·정치평론·문예비평을 숨가쁘게 넘나들었고, 친구들만큼이나 적도 많았다. 그는 1897년에 작고한 아버지를 이어 아카데미 공쿠르 회원이 되었고, 1920년에는 하원의원이 되었다.

레옹 도데의 정치 활동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하원의원 활동이 아니라 동료 문필가 샤를 모라스가 이끈 악시옹 프랑세즈 활동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가톨릭 신자·왕정주의자·민족주의자·중소자본가들을 결집시킨 악시옹 프랑세즈는 반의회주의와 반유대주의를 거리낌없이 선언하며 공화정의 폭력적 전복까지 꾀했던 극우 단체였다. 반유대주의자 레옹 도데는 샤를 모라스의 유력한 협력자였고,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에 협력했다. 레옹 도데가 종전을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은 그 자신에게 다행이었다. 두 해만 더 살았더라도, 그는 해방된 조국에서 반역자로 처형되었거나 적어도 모라스처럼 종신금고형을 선고 받았을 것이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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