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미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린 이탈리아 베니스는 50년 만에 찾아 온 38도의 혹서에 시달리고 있다.비엔날레가 개막한 14일 이후 이곳은 물의 도시이지만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로 정신이 멍할 정도로 뜨거웠다.
개막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계속 땀이 흘러 내려 손수건이 흥건해졌고, 입에는 물병을 매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불볕 더위에도 불구하고 관광 명소인 산 마르코 광장과 비엔날레 개최지인 자르디니 공원은 끝없는 인파로 붐볐다. 더위에 견디다 못해 사람들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이었고 허리를 드러낸 젊은 여자들의 배꼽티 차림이 볼 만했다.
자르디니 공원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설립한 한국관을 포함, 세계 여러 나라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각국 전시관은 밀려드는 관람객들을 서로 끌어 들이느라 각축전을 벌였다. 혹서 속에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전시 작품들 가운데는 어둡고 닫힌 공간의 영상물이나 설치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더위와 어둠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래서 작품 수준과 관계 없이, 냉방 장치가 잘 된 프랑스관에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최고의 성가를 얻은 미술 잔치인 만큼 볼거리가 풍성하다. 전통과 주류에 도전하는 대안적이고 실험적인 작업들이 매우 다양한 양식으로 펼쳐졌다. 특기할 만한 것은 사진과 영상 작품이 주종을 이룬 지난해 전시 경향과 달리 평면 회화들이 대거 복귀했다는 점이다. 일탈을 거듭하면서도 늘 모태를 그리워하는 세계 미술계의 자화상이다.
이번 전시의 슬로건은 '보편적 다양성(Glocalism)', 즉 세계적 보편성(Globalism)과 지역적 다양성(Localism)의 결합이다. 진정한 예술은 차이와 다양성에 기반을 둔다. '차이의 풍경'을 표방한 한국 작품은 디지털 산수화 등을 통해 고유성을 드러내면서 역대 비엔날레에서 보여 온 서구 중심의 문화 패권주의를 비판하거나 신체 부위들이 서로 뒤바뀐 인물군(群)을 통해 공식 역사를 뒤틀어 놓는 작업을 보여 주었다. 다른 국가관에서는 반미 색채의, 주류의 횡포를 비판하는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내 눈에는 주류를 비판·야유하는 변방 의식의 작품들이 자주 들어왔다. 주류 중의 주류라고 할 미국관과 영국관마저 비판적 작품으로 도배됐다. 이 두 국가관이 성취한 예술의 격조는 최고 수준이다. 미국관은 흑백 인종주의라는 특유의 오랜 화두를 새롭고도 다양한 어법으로 형상화했고, 영국관은 큼직한 코끼리 똥 위에 뚱뚱한 흑인 마돈나(성모)의 초상을 올려 놓아 주류적 사고에 균열을 내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21세기 문화·예술의 전략인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다양하게 행동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메시지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