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효선의 '내가 자란 서울'이란 책을 읽어보면 '청계천'은 원래는 '청개천'이라고 했다고 써 있다. '청계'는 맑은 시내라는 뜻이고 '천'은 '내, 시내'라 '청계천'은 맑은 시내에 시내가 또 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래 '청개천'이었다면 맑은 개천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자라지 않아 옛 청계천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저 기록사진이나 글을 통해서나 상상해볼 따름이지만 서울 한 복판에 맑은 개천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상쾌하다. 그 개천에서 빨랫돌 하나씩을 차지하고 빨래를 빨기도 했었다니.청계천 복원 작업이 7월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소망이 하나 생겼다. 듣기로 청계천에는 수많은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그저 광교라고 부르지만, 지난날엔 가장 큰 다리가 광교였고, 더 큰 다리를 대광교로 불렀고, 작은 다리를 소광교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만큼 다리가 많았다는 뜻일 게다. 광교 뿐만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장교, 관수교, 주교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다리들이 청계천에 있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현재의 청계천 풍경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풍경이다.
청계천에 있던 수많은 다리 중에서 단연 으뜸이었던 다리는 '수표교'였다고 한다. 삼일빌딩 네거리를 지나 동쪽으로 가다가 첫 번째 네거리에 놓였던 수표교는 돌다리였단다. 모로 세운 돌기둥 위에 돌을 깔았고 난간을 팔각으로 다듬었는데 그게 그리 아름다워서 수표교가 복개되던 1958년에 그 다리는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수표교의 돌기둥에 눈금이 새겨져 있었는데 척 단위로서 6척은 되었다고 한다. 그 수표로 개천의 물높이를 가늠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파리에 갔을 때 나를 감동시켰던 것들 중 하나가 센 강변에 놓인 다리들이었다. '새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파리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퐁 뇌프를 비롯해서 예나교, 아르교, 솔페리노교 등 그 다리의 수를 셀 수 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다리만 보고 있어도 될 정도로 아름다운 다리들이 놓여 있었다. 알렉상드르 3세교를 해질녁에 보고 있으면 그 화려함이 눈을 찔러서 저절로 눈이 감기기까지 했다.
서울의 다리들은 사람이 걸어서 건너 다니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동차가 달리는 것으로서의 다리이다. 거기에 익숙해 있던 내가 그야말로 사람이 건너 다닐 수 있는 파리의 다리들에 매혹되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어느 다리나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어서 마치 다리 전시회를 열어놓은 듯했다. 내가 좋아했던 다리는 단순하게 나무로 된 다리였는데 그 다리 위에 앉아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하나 둘씩 모여든 사람들이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고, 어떤 젊은이는 노래를 불렀고, 어느 소녀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친구와 선물을 나눠 갖기도 하고, 어떤 연인들은 센강을 바라보며 데이트에 골몰했으며, 어떤 이는 도시락을 까먹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다리에 기대어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 속에 섞여 바쁠 일 없이 앉아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다리가 있으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사람들한테 만남의 장소도 되고 좋은 휴식처도 될 텐데, 꽤나 부러워했다.
청계천이 복원되면 역시 다리들도 복원이 될 것이다. 물론 교통대란이나 생존권 문제, 또 앞으로 들어갈 막대한 복원자금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여러 가지 걱정을 안고 추진되는 일이긴 하나 기왕 복원 쪽으로 여론이 기울어져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했으면 싶다.
이제는 자연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도시 자체도 자연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이다. 서두르지 말고 꼼꼼하고 섬세하게 이 도시 속에 서민을 위한 자연을 이루어냈으면 한다. 그 중에 청계천의 다리들이 사람을 위한 다리로 복원되어 이 서울에도 자동차를 위한 다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드는 다리가 탄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 경 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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