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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니시마키 가야코의 그림책 "나의 원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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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니시마키 가야코의 그림책 "나의 원피스"

입력
2003.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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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일본에서 작은 어린이책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틈만 나면 지방의 어린이도서관을 찾아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그림책 이야기를 해준다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푸 곰을 닮은 아주 온화한 할아버지였다. 몇 시간 내내 지칠 줄 모르며 그림책 얘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보며 이렇듯 그림책을 사랑하며 아이들 책을 만드는 분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 후 한국의 한 출판사에서 그 분을 초청한 자리에 가게 되었는데 그림책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며 구연을 하고 담긴 이야기를 풀어갔다. 첫 장면의 시작은 노란 들판에 작은 토끼가 서있고 하늘에서 나풀대며 하얀 천이 떨어진다. 달달달 재봉틀로 원피스를 해 입은 토끼는 "나에게 어울릴까?"라며 들판으로 놀러 나온다. 주인공이 만나는 자연의 변화는 그대로 하얀 원피스의 무늬가 된다. 토끼의 콧노래와 감탄사가 반복되는 간결한 글에 어린애가 펜으로 스케치한 듯 자유롭고 편안한 그림을 그 분은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속삭이듯 포근하게 읽어 갔다.

그림 작가는 토끼의 모습에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을 그려 넣지 않았다. 모두 정면을 향해 있는데 흔히 4, 5세 아이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두 팔 벌린 동작이고 마지막 장면에만 뒷모습을 그려 넣었다. 들판으로 가는 토끼의 원피스는 별 무늬가 되어 자연과 하나가 된다. 신기하게도 주인공의 고정된 표정에서 놀람과 즐거움이 느껴지고 장면마다 향기와 새소리까지도 느껴졌다. 극히 단조로운 그림과 글의 이 책은 커다란 감동이나 재미를 주지는 않았지만 마치 바람에 꽃 향기가 실려 오는 듯 기분이 상쾌해지며, 따스한 기운이 온 몸으로 퍼져 나는 저절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렇듯 사랑 이 가득한 마음으로 그림책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나의 어린시절에는 그림책을 만날 수 없었으므로 부모의 음성으로 그림책을 만난 경험이 없었다. 특별한 만남으로 나에게 다가온 그림책, '나의 원피스.' 니시마키 가야코가 그리고 쓴 그림책은 1969년 처음 나와 5년 전 100쇄를 넘겼다.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거나 떠들썩한 관심의 대상이 된 것도 아니고, 볼거리 읽을거리가 많거나 교훈적인 여러 의미를 담은 책은 아니지만,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보는 책으로 뽑혔다.

가끔씩 이 책을 펼쳐볼 때마다 각박한 삶을 사는 어른들을 위해, 학교 공부에 짓눌리고 자연에서 멀어지는 아이들을 위해 감성을 키워주는 따뜻한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진다. 그림책 한 권이 마음을 정화하고 풍요롭게 하는 힘은 얼마나 큰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내가 만든 그림책을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유 애 로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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