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앞에 자리잡은 교향악단 양쪽에서 울려 나온 '개선 행진곡'의 힘찬 트럼펫 소리가 번갈아 밤하늘의 정적을 깬다. 이어 50여명의 발레리나들이 승리를 축하하는 군무를 추고 엑스트라와 병사 등으로 분장한 합창단의 웅장한 화음은 2만여 관객을 압도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가운데 가장 유명한 2막 2장의 '개선행진' 장면이 펼쳐지는 동안 관객은 탄성을 쏟아내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환호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22일 이탈리아 북부 인구 25만의 소도시 베로나의 원형경기장 '아레나'. 야외 오페라 무대의 원조인 이 곳에서는 매년 6월말부터 8월까지 수십만명이 야외 오페라를 만끽한다. 아레나 오페라 축제는 세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으로 유명한 베로나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세계적 명물이다. 기원 1세기 초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맹수와 싸우던 곳이 귀족예술인 오페라 대중화의 산실로 변한 것이다. 길이 152m, 폭 128m, 높이 30m에 이르는 타원형 경기장은 총 2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여기에서 야외 오페라가 시작된 것은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첫 작품으로 '아이다'를 올린 후 고정 축제로 자리잡았다.
이날 공연된 오페라 '아이다'는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감독한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 다니엘 오렌이 지휘를 맡았다. 소프라노 피오렌차 체돌린스와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가 각각 포로로 잡혀온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 역으로 출연했다.
아레나 공연은 마이크를 쓰지 않아 아리아가 멀리까지 잘 들리지 않고, 무대가 멀어 가수들의 표정을 알아보기 어려운 게 단점이다. 또 심리묘사 위주로 이루어진 3·4막에서는 조는 사람도 눈에 띈다. 하지만 200여명의 힘찬 합창과 경기장 3분의 1을 사용해 화려하게 꾸민 무대는 대중 오페라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특히 거대한 피라미드의 3개 면을 회전시키며 무대 배경을 자연스럽게 바꾸고, 무대 뒷편 관객석에까지 스핑크스와 대형 조형물을 배치해 입체감을 살린 것도 볼 만했다. 휴가를 이용해 부인과 함께 왔다는 영국인 폴 로우즈(51·경영컨설턴트)는 "영국에서 세익스피어 연극을 야외에서 여러 차례 보긴 했지만 오페라를 본 것은 처음"이라며 "환상적 무대와 어우러진 음악에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아레나 경기장 주변은 낮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북새통을 이뤘다. 전세버스를 타고 온 극성 오페라 팬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밤 9시에 공연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뙤약볕 아래 줄을 서서 기다렸고, 공연이 끝난 새벽 1시부터 수천명이 노천식당에 몰려 맥주로 목을 축이며 뒷풀이를 했다.
8월31일까지 계속되는 올해 오페라 축제에는 베르디의 '아이다'와 '나부코', '리골레토', 푸치니의 '투란도트', 비제의 '카르멘' 등 다섯 작품이 차례로 공연되고 있다. 7월부터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활동하는 소프라노 홍혜경씨가 '투란도트'에 시녀 '류' 역으로 출연한다.
/베로나=글·사진 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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