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특검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여야가 충돌위기로 치닫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6일 수사대상을 '150억원 수수 의혹'이상으로 확대하는 특검법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고 민주당은 특검법 처리를 "몸으로라도 막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지난번과는 달리 노 대통령이 발 빠른 대응에 나섰고 여권 내에서 일관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의혹을 덮기 위해 새 특검법을 거부하면 단호히 저항할 것이며 국민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며 대여(對與) 경고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여야의 대치는 특검수사 결과에 대한 평가, 새 특검의 필요성 등에 대한 엄청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현재로선 극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여야가 협상을 통해 새 특검법을 합의처리할 수 있는 여지도 없다고 봐야 한다. 한나라당은 "특검 수사발표로 남북 정상회담이 추악한 뒷돈 거래로 이뤄진 희대의 대국민 사기극임이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히 정상회담에 대한 대가성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1억 달러'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이 부분이 수사의 종결점이 아닌 수사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청와대와 민주당은 국익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의혹은 대체로 해소됐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150억원 부분은 개인적 비리이기 때문에 별도로 수사하면 된다고 보고 있다. 1억 달러 부분에 대해서도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1억 달러를 구분해 발표한 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대가성 여부, 사법처리 필요성 등은 재판과정에서 좀더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을 보였다.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된 추가적인 수사는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공방의 근저에는 또 양측의 정치적 이해가 깔려있다. 한나라당은 새 특검법을 통해 의혹의 초점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집중시킴으로써 노 대통령과 호남 민심, 또는 진보적 지지층 사이에 틈새를 만들겠다는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다. 여권은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취임 초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 상황에서 이러한 한나라당의 의도를 좌시하기가 어렵다. 노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예고'라는 충격 요법을 쓰면서까지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양측이 모두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만큼 1차적인 충돌은 국회에서 벌어질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이 입법을 강행하려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생길 수도 있다. 한나라당이 입법에 성공하는 경우에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 정국경색이 올 수 있고, 자연히 국회 본연의 기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새 특검법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사이 검찰이 여론의 추이를 봐가며 150억원 부분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는 방안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다. 다만 한나라당에 최병렬 대표 체제가 새로 들어선 만큼 여야 영수회담 등을 통해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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