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신을 맹비난했던 이기명씨의 용인 땅 1차 매입자라는 사람과 화해한 기사가 얼마 전 여러 신문에 났다. 민정비서관도 배석한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반주를 들며 그 동안의 불화를 씻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고 느낀 첫번째 소회는 그 업자가 얼마나 센 사람이기에 문 수석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했을까 였고, 다음으로 이 사람이 YS정부 때의 김 모 변호사나, DJ정부의 이수동인가 하는 사람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존재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30년이 넘게 기자생활을 해 온 필자의 상식으로 판단컨대 이런류의 기사는 대개 '발로 뛰어' 찾은 쪽 보다는 누군가가 '흘린 것'을 받아 들인 경우에 해당한다. 어느 쪽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화해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쪽에서 슬그머니 흘린 것을 신문이 수용하지 않았나 싶은 기사다.
문 수석이 만난 이 사람은 부산에서 창신섬유라는 중소업체를 운영하는 강금원회장이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문 수석에게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은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 온 열렬한 지지자라고 한다. 그렇다 해도 피해자인 문 수석이 쫓기듯 서둘러 화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또 이래서는 공권력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
문 수석이 어떤 사람인가. 일부언론은 그가 비서실장보다도 더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 평가할 정도로 이 정부 실세 중의 실세다. 노 대통령 당선의 모태인 '부산인맥'의 대표 격인 그에게 그런 평가는 결코 과공(過恭)이 아닐 지 모른다. 이 정부 들어 발생한 온갖 일의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선 그는 '왕 수석', '2인자'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다.
이런 문 수석이 일개 업자로부터 무차별적 인신공격을 받았다. 요지는 "정치도 모르는 사람이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잘못 보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퇴요구까지 받았다. 뿐만 아니다. 이 업자는 노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라는 신부에게도 "성직자 신분을 망각한 채 정치에 개입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왕 수석'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에게도 입 달린 대로 내뱉을 수 있는 이 사람을 이 정부의 어느 누가 홀대할 수 있겠는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갈피를 잡기 어렵게 하는 대목이다. 대개 업자란 해당 세무서의 법인세 담당 직원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우연히 관내 파출소장과 부딪쳐도 지은 죄 없이 오금이 저린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 일상사다. 물론 이런 관행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업자의 행태는 '열린 사회'라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혹시 이 정부 출범 전 이 사람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볼모라면 더 늦기 전에 털어내야 한다. 다시 잘못된 역사를 반복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마도 지금 이 시각, 민정수석도 화해할 수 밖에 없었던 이 실력자의 집이나 사무실 등엔 '파리 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바로 지난 정권의 처절한 실패가 반면교사다. DJ정권의 참담한 패착은 권노갑 김홍일 등의 개입 때문만은 아니다. 공인인 이들의 실체는 드러나 있어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음습한 곳에서 실속 챙기는 사람들이 더 큰 문제다. 검찰총장이 관련사건의 일보일보를 직보 해야만 했던 또 다른 실력자도 존재하지 않았던가.
아태재단의 상임감사 였다는 이 모 같은 존재나 YS정부 때의 김 모 변호사 등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장·차관 등 고위직을 맡으려면 우선 이들에게부터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 정부가 이런 과오를 되풀이 않으려면 특단의 다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 걸음이 바로 '간이 배 밖에 나온 듯한' 이런 사람들과의 과감한 절연으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노 진 환 주필/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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