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남녀 4인의 메신저 토크 드라마 "섹스 앤 시티"/"밝힐 줄 아는 여자가 아름답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남녀 4인의 메신저 토크 드라마 "섹스 앤 시티"/"밝힐 줄 아는 여자가 아름답다"

입력
2003.06.27 00:00
0 0

드라마 '섹스 앤 시티'를 좋아하는 남녀 4명이 모여 한 판 수다를 떨었다. 미 HBO가 제작, 케이블 TV OCN과 캐치온이 각각 화·수요일 밤 12시와 금요일 밤 12시에 방송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뉴욕에 사는 잘 나가는 전문직 여성 4명이 등장해 남자와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뉴욕 여성들의 최신 유행 패션과 고급스러운 사교 문화를 보여 주는, 지극히 미국적인 드라마에 한국의 20·30대 여성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섹스 앤 시티' 시청자와 메신저 토크를 통해 한국 20·30대의 섹스에 대한 생각, 소비의식을 알아 보았다. "결혼에 대한 압박을 피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여자1 최성원(31·오감디자인 직원), '남녀 관계에서 섹스는 꼭 필요한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여자2 김민영(32·홍보대행사 직원), "드라마에서처럼 아무 남자랑 자면 동물과 다른 게 뭐냐"고 발끈하는 남자 김태기(32·한국야쿠르트 사원)씨 그리고 여자3으로 문화부 최지향 기자가 참여했다.

매일 식탁 위에 오르는 섹스 이야기

남자 젊은 남녀가 섹스 앤 시티(이하 섹앤)를 좋아하는 건 문화적 이질감 때문 아닌가?

여자1 우리 드라마는 소극적 여성관을 탈피하지 못하잖아. 여자 네 명이 매일 밥 먹으며 섹스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는 거 자체가 놀랍지.

여자2 히타치 자위 기구에 중독된 캐리나 옆 집 부부가 성 관계 하는 소리에 맞춰 자위를 즐기는 사만다 이야기가 우리 드라마에서 말이나 되겠어?

여자1 관계 중에 여자를 창녀 취급하는 남자, 너무 커서 섹스 파트너를 못 구하는 남자 미스터 칵키(Cockey)…. 아, 오르가슴을 주지 못하는 남자 등장할 때 봤어? 남자는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데 무료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만다. 샬롯은 아예 잠들어 버린 적도 있잖아. 정말 별별 사람들이 다 나오지?

여자3 여성도 성의 욕구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속 시원해요. 대표적인 이가 사만다죠?

여자1 섹스광

여자2 남자 밝힘증

남자 난 넷 중 그 여자가 제일 싫어

여자1 너무 밝혀서?

남자 언제 어디서든 맘에 든다고 '원나잇∼'하면 동물하고 뭐가 달라

여자들 헉!!!

여자1 난 사만다가 이성으로 판단하지 않고, 감정에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게 좋아.

여자2 그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쿨하게 매듭짓지. 캬∼∼ 멋져.

여자3 사만다는 남자 밝히다가 가끔 험한 꼴을 많이 당하지 않아요?

여자1 남자 잘못 꼬셨다가 사교계에서 쫓겨나고 갑부랑 사랑을 나누다가 그 집 하녀로부터 쫓겨나고….

여자3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한 30대 여성이라면 더더욱 성에 대해 솔직해지기 어려울 걸요.

여자2 하긴 우리나라에서 사만다 같은 홍보사 대표가 그러고 다니면 금새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못 살아 남지. 배울 만큼 배운 캐리 같은 여자가 잡지에 자기의 성생활을 늘어놓는 것도 그렇고.

여자1 바텐더와 동거하고 폰섹스를 즐기는 변호사 미란다는 어떻고. 자칫하다 인생 포기해야 하지 않겠어?

여자1 내가 들어 있는 섹앤 동호회 사람들은 우리나라 여자들도 성에 대해 자유분방해졌으면 좋겠다는 이가 압도적이지. 하지만 그러다가 사회에서 매장당하기 십상이거든.

남자 즉, 우리 현실에서는 안 되니 섹앤 보면서 카타르시스 느끼나 보지.

여자2 그런 셈이지. 전문직 여성들이 각자의 스타일대로,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멋져 보이는 도시에서.

여자3 옷도 잘 입고 게다가 끊임없이 연애하며… 대리만족!!!

미국의 독신여성 한국의 독신여성, 같은 점 다른 점

여자1 난 며칠 전에 독립했어. 나이 들어 식구들 눈치보고 사는 거 부담스럽지. 결혼에 대한 강박관념도 싫고.

여자3 우리나라에서 독신으로 살려면 너무 참견하는 사람 많죠?

여자1 걱정을 가장한 참견.

여자1 그래도 섹앤 보면 결혼하라는 부모님도 등장하지 않고, 직업도 있고, 함께하는 친구도 있고, 당당하고… 멋져 보여.

여자3 하지만 그들도 젊고 싱싱한 20대에 대한 콤플렉스 가지고 있잖아요?

여자1 캐리가 전 애인 빅과 결혼한 20대의 나타샤를 보고 나이든 자신을 초라하게 느꼈었지.

여자2 그래도 30대에 들어서면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는 우리나라에서의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뭐.

여자1 명품 입고 새로 생긴 멋진 레스토랑 찾아 다니고, 그러다가 카드 펑크 나서 계산대 앞에서 민망한 꼴도 당하는 주인공들을 보면 우리 20·30대와 비슷한 점도 있잖아?

여자2 집에서는 선풍기 틀어 놓고 일하잖아?

남자 우리나라 여자들은 명품 가방 하나씩은 있더라. 다 부자인가?? 신기해.

여자2 여자가 직장 생활 한 5년 하고 나이도 좀 먹으면 취향이 고급스러워 지지. 시끄러운 데 보다는 멋있는 곳 찾아 다니고, 가끔 스파도 받고 발 관리도 하고 좋은 옷도 입고…. 꼭 드라마를 보고 따라 한다기보다는 '내 몸에 과하다 할 정도로 아낌 없이 투자한다'는 '보신주의'가 요즘 20·30대의 소비 추세야. 섹앤이 젊은이들 성향에 잘 맞아 떨어진 것이지.

남자 그래도 드라마 보고 무조건 따라 하는 사람도 많을 거야. 허영심.

여자1 여자 네 명이 온 몸을 비틀며 요가학원에 다니거나 다 같이 트레이닝복 차려 입고 센트럴 파크에서 파워워킹 하는 거나… 그런 웰비잉(Well Being) 문화를 보면 멋져 보이는 건 사실이고 따라 하고 싶기도 하지.

여자2 캐리의 목걸이나 펜디 핸드백 마놀로블라닉 구두는 드라마 덕에 선풍적 인기를 얻었잖아?

여자1 캐리의 말 중에 "여자에게 지갑의 의미는 남자의 야구공 같다. 지갑 없이 세상에 나서면 벌거 벗고 세상에 나서는 것 같거든"이라는 말이 정답.

남자 야구공은 비싸지 않은데. 기가 차네?

여자2 생물학적으로 남녀가 다른 탓이니 이해해야 함.

남자 허허

여자1 그나 저나 섹앤이 시즌 6으로 끝난다는 소식에 동호회원 모두 아쉬워 하고 있어.

여자2 하긴 배우들이 다 늙었으니까. 캐리 역으로 나오는 사라 제시카 파커는 마흔인걸.

여자3 하긴 마흔 넘은 여자 넷이 모여 섹스와 패션 이야기 하면 사람들이 거부감 느낄 수도 있겠죠?

여자2 30대 독신은 멋져도 40 넘은 독신은 안 된다는 얘기?

남자 약간 추하지 않을까? 드라마에는 현실과 다른 구석이 많다는 걸 여자분들 모두 알아줬으면. 좋아하긴 좋아하되 너무 동화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면서.

여자들 드라마 보기 모범 가이드군. 박수!!!

/정리=최지향기자 misty@hk.co.kr

■ 여성 섹스드라마 한국 '불모지대'

“정치인 애인이 변태적 섹스를 요구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드라마 ‘섹스 앤 시티’에 나오는 이런 대사가 TV에서 우리 연기자의 입을 통해 흘러 나온다면 10명 중 8, 9명은 다른 식구들 보기가 민망해서 급히 채널을 돌릴 것이다.

공급이 없는 것일까, 수요가 모자란 것일까. 미국에서 수입한 섹스 드라마는 꽤 있지만, 우리 배우가 우리 말로 대사를 하는 섹스 드라마는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 ‘처녀들의 저녁 식사’(감독 임상수)를 두고 타임지가‘한국 여성의 성 담론이 활발해졌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지만 일부에서는 ‘총각들의 저녁 식사’라고 평할 만큼 여성 내면의 욕망과 궁금증을제대로 풀어주지는 못했다는 평이다.그나마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감독 유하)가 결혼한 여성의 ‘바람’을 통해 여성의 욕망을 다뤘으나 미혼 여성이 공개적으로 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여자들이 욕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성 이야기를 어떻게 즐기는지, 즉 여성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아직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여성이 처음으로 성 담론을 접하는 것은 드라마도 비디오도 아닌 만화”라며 아직까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성 담론을 즐겨야 하는 우리 여성의 심리적 특성에 부합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존재하지않는다고 말했다.

여성의 성 얘기가 나오면 ‘노출’이 따르게 마련인데 그 경우 ‘누가 벗었다’는 식의 센세이셔널한 화제로 변질해 버리는 것도 여성의 성을 제대로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지 않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밀애’처럼여성의 성 주도권을 다룬 영화가 지나치게 비장한 분위기를 띠는 것도 그만큼 ‘여성의 자유로운 성은 인생을 걸만큼 무겁다’는 것을 뒷받침한다.물론 영화 ‘몽정기’나 ‘색즉시공’처럼 남자들의 성을 다룬 코미디는상업적 측면에서도 이미 검증이 끝나 있다. 한 영화 제작자는 “섹스 코미디의 흥행 가능성이 검증된 상황인 만큼 여성을 주제로 한 섹스 코미디를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혼 남녀가 자유롭게 성을 이야기하는 ‘싱글즈’가 7월 개봉을 앞두고있어 그 파장이 주목된다. 그러나 ‘옥탑방 고양이’처럼 ‘자고 나면 춘향이’ 식의 드라마 구조가 여전히 주류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박은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