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방송사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제 2의 고소영'이라고 했다니까요. 하하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의 주인공 김서형(27)은 웃음이 화통하다. 거기에 또렷한 말투와 도시적 이미지, 영화에 대한 '쿨'한 태도까지 갖추었다. 1994년 KBS 16기 탤런트로 뽑혀 처음엔 비교적 자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나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이제는 예전의 자기 모습을 농담처럼 말할 정도로 세월의 단련을 받은 듯하다.'오버 더 레인보우' '베사메무초' 등 4편의 영화에 얼굴을 살짝 내밀었지만, 첫 주연작인 데다 본격 섹스 영화를 표방하는 영화여서 여배우에게 쏠리는 시선이 각별하다. 김서형은 대담한 노출 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 독특한 자신의 개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일단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노출을 많이 했는데 앞으로 에로 배우라는 꼬리표가 붙을까 두렵지 않느냐, 노출할 땐 어땠느냐, 원 나잇 스탠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동안 가장 많이 받은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꼬리표 따위는 두렵지 않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노출 장면 찍을 때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원 나잇 스탠드? 그건 영화 속 신아의 얘기일 뿐이다."
"이건 에로 영화가 아니라 섹스 영화"라는 그는 "여자가 흔히 겪을 만한 사랑 얘기를 제대로 표현한 영화"라고 자평했다. 웃음소리가 크고 털털하며 여린 내면도 있는 이미지를 찾던 영화사는 일찌감치 김서형을 찍었고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다른 여배우에게 연락하지 말라, 하고 싶다"고 했다. 감독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며 캐릭터 신아와 배우 김서형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한 덕에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노출 장면은 꽤나 중노동이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집에 살기로 하면서 관계를 갖는 장면은 이틀이나 찍었을 정도로 고되었다. 음모가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계획된 정확한 동선을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이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공사'(민감한 부분을 감추는 것)는 더 불편하게 만든다. "남자는 양말로 감싸는데, 그렇게 하면 더 강조되는 느낌이 든다니까요. 하하하."
남장 여자를 멋지게 연기한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를 좋아하는 김서형은 "예전보다는 한결 내공이 생긴 것 같다"며 TV, 영화 장르를 막론하고 도전해 볼 생각이란다. 섣부르지 않은 새로운 여배우 한 명이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 어떤 영화
에로 비디오 출신 봉만대 감독의 충무로 입성작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영화다. 호스피스 서동기(김성수)와 시장 의류 디자이너 조신아(김서형)가 우연히 만나 하룻밤 사랑을 나눈 뒤, 정식으로 연애를 시작해 사랑하고, 다투고, 헤어지는 얘기를 담았다.
섹스 장면의 운용은 감독의 재주가 빛난다. 키스, 섹스, 자위 등 성과 관련한 장면이 새롭게 시도되는 카메라 워킹을 통해 낯선 각도로 보여지고, '폼' 보다는 현실적 섹스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일상의 섹스를 담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삐걱거리는 이야기 구조는 치명적 약점이다.
동기의 직업이 왜 호스피스로 설정될 수밖에 없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으며, 떠나려는 여자의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되지 못했다. 섹스 장면이 많지만 두고 두고 패러디할 만한 명장면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27일 개봉.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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