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사회적 소유물?우리의 몸이 누구의 소유냐고? 참으로 황당한 질문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이미 '나의 손' '나의 얼굴' '나의 몸'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너무나도 자명한 이런 사실에 대해 새삼스럽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과연 가당한 일인가?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 명료한 것만은 아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근대 이전에는 노예제도가 있었다.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를 꽃 피운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도 노예제도가 있었고, 조선 시대에도 노비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서도 19세기까지는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이런 사회에서 살았던 노예는 자신의 몸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다.
개인이 자신의 몸과 재능의 소유자라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된 것은 오랜 인류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일로 근대 개인주의 문화가 퍼진 결과였다. 우리는 근대 개인주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개인이 몸의 진정한 소유자라고 믿고 있으며, 그 믿음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노예제도의 긴 역사를 생각해 보면 우연히 타고난 몸과 재능을 '반드시' 개인의 것이라고 단정할 필연적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난해 타계한 존 롤즈(John Rawls)라는 미 하버드대학의 철학자는 개개인의 몸에 깃든 재능을 사회 전체의 것으로 보는 게 도덕적으로 보다 타당하다는 주장을 폈다. 개인이 타고난 재능은 선택이나 노력이 아닌 순전한 운의 결과이기 때문에 반드시 개인의 소유로 보아야 할 도덕적 이유가 없다는 뜻에서다. 그의 주장은 우리의 일반적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가 완전히 황당무계한 생각을 늘어놓았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그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개인의 것, 사회의 것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듯 개인의 몸과 재능이 개인의 것이고, 그 몸과 재능을 사용해 얻은 부도 전적으로 개인의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 과연 현대 사회가 도입하고 있는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와 조세제도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물론 개인은 강도나 외부 약탈자로부터 자신의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경찰과 군대 정도는 필요로 할 수 있다. 그래서 군대와 경찰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일정한 비용을 세금으로 지불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국가는 왜 그런 수준을 넘어 빈민을 구제하고 실업자들에게 실업수당을 지불하기 위해 보다 많은 세금을 요구하는가? 국가가 그렇게 강요하는 것은 강탈이나 다름 없다. 개인은 마음이 내키면 얼마든지 자선기금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가 강제로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은 결국 내 것, 네 것을 빼앗는 부당한 행위가 아닌가? 개인의 몸과 재능을 전적으로 개인의 소유로 본다면 오늘날과 같이 광범위한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조세국가'를 정당화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거꾸로 개인의 타고난 몸과 재능은 순전히 운의 결과이기 때문에 모든 개인의 몸과 재능을 사회의 소유라고 가정해 보자. 개인은 자신이 우연히 갖게 된 몸과 재능의 '진정한' 소유자가 아니므로 그것을 사용해 얻은 부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이 획득한 부를 모두 사회에 환원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가 그 부를 분배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사회는 부를 분배하는 일정한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에 따라 부를 개인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가 개인에게 부를 똑 같이 나눠준다고 가정해 보자. 탁월한 재능 때문에 많은 부를 산출한 개인이나, 재능이 없어 보잘 것 없는 부를 산출한 개인 모두가 같은 양의 부를 분배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재능 있는 개인은 자신이 부당하게 대우받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자신의 재능으로 산출한 많은 양의 부가 무능하거나 게으른 사람들 몫으로 이전되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두 천사와 같은 마음씨를 갖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가정하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기심을 갖고 있고, 노력만큼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도 있다. 이런 평범한 사실을 무시한 채 노력과 사회적 기여에 대해 차등을 두지 않는다면 어떤 개인도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또 성실하게 생산활동에 참여하지도 않을 것이다. 성실하든 게으르든 똑 같은 부를 갖게 될 텐데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겠는가? 게다가 재능 있는 자들은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부담을 느끼고 그 사실을 숨기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개인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는 그 재능을 활용하기 위해 그 개인에게 보다 많은 노력과 수고를 요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의 몸과 재능을 사회의 소유라고 간주하여 사회의 부를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은 부지런하고 재능 있는 자들을 게으르고 무능한 자들의 도구로 삼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개인과 사회 양자의 것"
도덕적으로 볼 때 개인에게 속한 몸과 재능을 100% 개인의 것으로 보거나 사회의 것으로 보는 것은 둘 다 문제가 있다. 몸과 재능의 진짜 소유자를 개인으로 볼 경우, 개인은 타인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의 몸과 재능을 사용해서 얻은 부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현대 국가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부유한 계층으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고 있다.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개인이 자신의 몸과 재능에 대해 절대적 소유권을 향유한다고 보기 어렵다. 빈곤층과 실업자에게 상당한 복지혜택을 주고 있는 현대 사회의 현실은 개인의 몸과 재능이 전적으로 개인의 소유라는 우리의 일상적 신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몸과 재능에 대한 개인의 소유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몸과 재능의 개인 소유를 완전히 부정하게 되면 부는 평등 원칙에 따라 분배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에 따라 개인이 자유롭게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자유도 제약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과 재능의 소유 주체를 개인과 사회 양자로 보는 것이 도덕적으로는 보다 타당할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를 개인의 소유로 인정해야 하고 어느 정도까지를 사회의 소유로 인정해야 하는지는 사회마다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생산과 소유를 마음대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의 몸과 재능의 상당 부분이 사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개인은 사적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한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재능에 대한 최소한의 소유권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반대의 논리가 성립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은 자신의 몸과 재능을 사용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며,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에 대해 거의 독점적 권리를 누린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몸과 재능에 대한 개인의 권리가 완전히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인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이 생산한 부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며, 군복무와 같은 사회적 요청에 반드시 응해야만 한다. 세금을 내지 않거나 군복무를 거부하면 공권력에 의해 처벌 받게 된다. 때문에 개인이 자신의 몸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과 자유권을 누린다고는 보기 어렵다.
요컨대 몸과 재능이 개인의 노력이나 의사와는 상관없이 순전한 운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라면, 롤즈처럼 그것을 사회의 자산으로 간주하는 것도 완전히 황당한 생각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논리적 귀결로서 개인이 몸과 재능을 사용하여 산출한 부를 사회의 공동자산으로 인정해 현재보다 더 평등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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