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난의 지난번 글 '추미애가 옳다'에 대해 개혁국민정당 유시민 의원이 강하게 항의해왔다. 유의원은 그 칼럼에서 자신의 견해로 인용된,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이 오로지 민주당 후보여서 그를 지지한 사람은 (신당의 지지 기반에서) 버려두자"('인물과 사상' 26권 좌담)는 표현이 자신의 뜻을 정반대로 왜곡했다며 내게 자신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4월4일자 '아침 편지'를 읽어볼 것을 권했다. 들어가 읽어보니 과연 유의원은 "단지 민주당 후보이기 때문에 또는 민주당 후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노무현을 지지했던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을 (개혁당이)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쓰고 있었다. 정당이 유권자들을 배척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주객이 뒤바뀐 느낌도 있지만, 유의원이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까지를 개혁 정치의 지지 기반으로 꼽고 있는 것이 적어도 그 글에서는 또렷하다.같은 사람의 글과 말이 서로 어긋난 듯 보일 때는 글쪽을 따르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글은 말보다 더 정제된 표현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물과 사상' 좌담의 '버려두고'라는 표현은 뜻 없이 미끄러져 나온 말일 터이다. 아침 편지들을 챙겨 읽지 못해 그의 생각을 곡해하게 된 것을 유의원에게 정중히 사과드린다. 그러나 유의원의 권유로 들어가본 그의 홈페이지에서 그가 김근태 의원에게 쓴 편지(5월15일자)를 내처 읽으며 내 생각은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유의원은 그 편지에서 김의원의 '개혁적 통합신당론'을 '선거 때마다 민주당 후보를 찍어온 유권자들을 그대로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이를 비판적 맥락에 배치하고 있다. 이것은 4월4일자 편지와는 어긋나는 얘기다.
그러니까 내 혼란은 유의원의 혼란에 기인하고 있다. 유의원에게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애물인 듯하다. 결국 '인물과 사상' 좌담에서 '버려두고'라는 말이 미끄러져 나온 것도 괜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범여권이 새로 확충해야 할 지지 기반으로 유의원이 상정하고 있는 대상이 두 편지에서 다르게 표현된 것도 눈에 띈다. 4월4일자 편지에서 그들은 '개혁을 바라지만 민주당 후보라는 이유 때문에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로 표현된다. 5월15일자 편지에서 그들은 '죽어라고 한나라당만 찍어온 대중'으로 표현된다. 내 생각에 이 두 집단은 아주 다르다. '개혁을 바라지만 민주당 후보라는 이유 때문에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는 지난 대선 때 권영길 후보를 지지했거나 기권했을 터이다.
사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 개혁운동의 방향이 암시된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권영길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는 과반에 이르렀다. 중단기적으로는, 이들 범개혁 유권자들의 뜻이 총선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도록 길을 내는 것이 '한나라당만 찍어온 대중'을 새로 붙잡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다. 다시 말해, 지역구 국회의원 수가 비례대표 의원 수의 다섯 배나 되고 최대 선거구 인구가 최소 선거구 인구의 네 배에 가까워 유권자 다수의 뜻이 파묻혀버리는 지금의 위헌적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스템 개혁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여기에는 범여권 정파만이 아니라 민노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힘을 합할 수 있을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득권 세력은 이런 시스템 개혁에 저항할 것이다. 개혁파는 바로 이 시스템 개혁을 내년 총선의 쟁점으로 삼아야 한다.
민주당은 물론 썩은 정당이다. 그러나 이 정당은 지닌 것이라고는 명분 밖에 없었던 비주류 정치인을 대통령 후보로 뽑았을 만큼은 맑은 정당이다. 개혁은 인적 청산을 수반하게 마련이지만, 동시에 기존 구성원과는 '종자'가 다른 신한국인이나 신인류를 상상하는 동화적 판타지에 이끌려서도 안 된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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