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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분규病' 함께 고치자 / 노·사·정 3者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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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분규病' 함께 고치자 / 노·사·정 3者의 입장

입력
2003.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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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계의 입장"원칙 없는 노사문제 처리로 '줄 파업' 사태가 빚어졌고 이로 인해 경제가 골병 들고 있는데,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최근 파업 사태에 대한 재계의 인식은 한마디로 '정부가 스스로 초래한 난국'이다. 두산중공업, 화물연대, 조흥은행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파업 해결 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무원칙 대응이 사상 초유의 '줄 파업 사태'로 번졌다는 시각이다.

한국 경총 이동훈 상무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노동계의 기대심리를 한껏 높여준데다가 파업 당시 불법행동도 나중에 면죄부가 주어지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노사문제 처리에 대해 재계에는 '무원칙의 원칙', '비일관성의 일관성', '혼돈의 반복'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A기업 고위 관계자는 "평소 조용했던 노조들도 '가만 있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술렁거리고 있는데다 파업만은 피해보려고 노조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는 사업장도 있다"며 "기업이 겉으로 멀쩡해도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재계는 최근의 파업사태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할 경우 참여정부 내내 기업이 노조에 끌려 다니는 '힘의 불균형'이 구조적으로 고착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럴 경우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경제계의 시각.

재계 입장에서 답답한 것은 현 상황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재계와 너무 다르다는 점. 더구나 과거와 달리 재계와 정부의 대화채널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재계가 피부로 느끼는 위기감을 제대로 전달해줄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노사문제를 순리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정이나 노·사 뿐 아니라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경제계 입장을 전달할 수단은 성명서 발표를 통한 언론 보도가 전부"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재계가 최근 이례적으로 대 정부 성토의 목소리를 높이고 투자 중단, 공장 해외 이전 등 초강수 카드를 뽑아 든 것도 이 같은 속사정 때문이다.

'엄포용' 또는 '압박용'이라는 일부 시선에 대해 한국 경총 김영배 전무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 기업은 이윤을 찾아 움직이게 돼 있다"면서 "기업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장사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전무는 "정부가 이제라도 노사문제 처리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고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 노동계의 시각

"불황과 경제 침체의 원인을 노사분규 탓으로 돌리는 건 재계가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조흥은행 파업과 부산·대구·인천지하철 파업에 이어 25일 민주노총의 경고성 4시간 파업 등 연쇄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노동계는 24일 "최근 재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파업에 대한 우려는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기 불황을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파업을 벌이는 노조가 지목되는데 대해서는 상당히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되풀이하게 마련이며 지금의 국내 경기침체는 전세계를 관통하는 경기 불황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재계는 SK그룹의 분식회계와 같은 자신들의 과오가 경제에 미친 부작용은 간과하고 노동계만 탓 하느냐"고 반문했다.

노동계에선 6월말∼7월초로 파업이 집중돼 있으나 대부분 임·단협과 관련돼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올 파업의 규모나 강도도 예년과 비슷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즉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일상적인 노조 활동이고 해마다 임·단협을 치르는 기업들은 파업으로 인한 위험요인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 관계자들은 때문에 "최근 경제단체들이 연쇄파업 때문에 곧 우리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며 재계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노동계 일각에선 계속 이어지는 파업으로 인해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는 등의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어느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또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며 상대적으로 온건노선을 걸어온 한국노총이 새 정부들어 강성으로 돌아선 노동운동의 환경 변화가 재계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노동계는 파업을 무기로 노사분규를 풀어갈 수밖에 없는 데는 정부나 사용자의 책임이 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노총 김성태 사무총장은 "파업이 노사문제를 푸는데 만능이라고는 생각지 않으나 사회적 관심을 끌어야 정부나 사용자측이 해결 의지를 보이기 때문에 마지막 수단으로 '파업'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파업 예고는 그 이전에 해결하자는 노동계의 메시지"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재계가 대화를 통한 해결을 보이지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실력행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 정부의 대응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정부는 재계가 느끼는 위기의식을 어느 정도 인정은 하면서도 여전히 전체 상황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통제해 나갈 수 있는 위기'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파업 등 현재의 노사분규가 예년에 비해 심각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노 대통령이 24일 근로감독관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신문을 보면 한국이 노사분규로 완전히 침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다"면서 "지난해 보다 훨씬 낫다"고 말한 데서도 이 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최근 벌어지고 있는 파업이 보여주는 행태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대기업 노조가 벌이는 파업의 '도덕성과 책임성', '이기적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고 정부를 길들이려는 파업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24일 "대기업 임금 수준이 전체 노동분배 소득 비중에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은 대기업 근로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임금 격차, 즉 노동 시장의 양극화 현상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는 '국민소득 2만 달러'목표를 언급하면서도 거기에 걸맞는 새로운 노동정책의 구상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임기 중 새로운 노사 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뜻을 밝힌 적이 있고 "줄줄이 예고된 파업이 고비를 넘기면 중장기 노동정책에 대한 대화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새 정부는 현재의 위기 보다는 잠재적 위기,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위기를 더 걱정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최근 정부 관계자들은 해외 투자자들에게 "법과 원칙을 엄정히 지켜나갈 것이며 노사 양자 가운데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대등하게 대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이 재계가 기대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부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불법 파업이라고 해도 협상도 하지 않고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불법 파업 중에도 협상은 하고 법적 책임 추궁은 사후에 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새 정부가 강조해온 노사문제의 두 가지 기본축, '법과 원칙', '대화와 타협'이 이런 식으로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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