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 대법원이 23일 대학 입학 사정에서 소수 인종이나 민족을 우대하는 정책(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은 합헌이지만 인종·민족별로 쿼터를 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대법원은 이날 미시건 대학 법학대학원(로스쿨)을 지원한 백인 3명이 소수인종 우대정책으로 불이익을 받아 불합격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5대 4로 대학측의 조치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같은 대학이 학부 입학 사정 때 소수계에 20점의 가산점을 일률적으로 부여한 조치에 대해서는 6대 3으로 평등권의 침해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1978년 '캘리포니아주 정부 대 바커'사건 이래 대학 사정에서 '다양성' 확보를 위해 인종을 가산 요소로 삼을 수 있느냐를 두고 진행돼온 미국 사회의 오랜 논란에 또 하나의 획을 그은 것으로 분석된다.
보수와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이 팽팽히 맞선 로스쿨 사건에서 진보 편에 선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은 "지도자 양성의 길은 모든 인종과 종족의 유능하고 자격 있는 개인에게 가시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고 밝혀 다양성을 인종 우대 학생 선발의 준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오코너를 비롯 다수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은 다양성을 근거로 한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향후 25년 이후에는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밝혀 판결의 효력이 한시적으로 미치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번 판결 결과에 대해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모두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진보적 단체인 전미(全美)유색인종증진협회(NAACP)측은 "인종 우대를 금지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통과되지 않았다"며 "대법원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를 원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반면 보수적인 개인권리보호센터의 테리 펠 회장은 "오늘은 대학 입학 사정에서 인종적 고려를 종식하는 긴 싸움의 시작"이라며 "이번 판결로 각 대학이 법률적 소송의 위험 없이 인종을 고려하는 길을 찾는 것이 더 힘들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다른 소수계에 비해 수는 적지만 각 출신 고교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을 비롯 아시아계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이 같은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번 판결은 지난 25년간의 법률적 불확실성을 끝내기 위한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다"며 "본질적으로 현상유지(Status Quo)를 지지한 것뿐"이라고 혹평했다.
이번 판결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오코너 대법관이나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임할 경우 후임에 '확실한 보수파'를 지명하라는 보수주의자들의 압력을 더욱 거세게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시건대 사건 소송을 주도했던 보수파 단체 '정의 연구소'의 클린턴 볼릭 부회장은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이런 인종적 특혜를 지지한 대법관 다수를 공화당이 지명했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미시건대의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공공연히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부시 대통령은 이날 "인종 문제는 미국의 현실이지만 미국이 진정으로 피부색을 구분하지 않는 '색맹 사회'가 되는 날을 고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란
백인에 비해 경제적·사회적 약자인 소수계에게 교육·취업 등 기회를 제공, 인종·민족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미국의 제도이다. 소수계 입장에서 보면 '차별 철폐'를 의미하지만 백인들에게는 '우대정책'으로 받아들여진다. 아프리칸 아메리칸 (흑인)이나 히스패닉, 아시아계, 아메리칸 인디언 등이 수혜 대상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대통령령으로 정부 계약에서의 인종·피부색 등의 차별 금지를 요구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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