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32> 환란 광풍을 뚫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32> 환란 광풍을 뚫고

입력
2003.06.24 00:00
0 0

휠라 코리아가 언제나 승승장구만 했던 것은 아니다. 브랜드 사업은 한 순간의 판단착오로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법이다. 1997년 외환위기이후 줄줄이 사라진 유명 브랜드들을 생각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아마도 내가 휠라 코리아를 하면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은 때도 외환위기 직후였던 것 같다. 당시 금 모으기 운동에 이어 외국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지는 바람에 외산 브랜드 사업체 모두 존폐 기로에 서야 했고, 휠라 코리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제품 불매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가면서 매출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속을 태우던 나는 마케팅 팀과 머리를 맞댄 끝에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국산품 사용=애국'이란 '오해'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며칠 뒤 일간지에는 일제히 '무엇이 진정한 국산입니까'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해외에서 제작, 생산해 국내 상표만 붙인 것이 국산인가, 아니면 해외상표라도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이 국산인가'라는 지적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로 일부 국산품의 경우 껍데기만 한국산이고, 알맹이는 모두 외제인 것이 많다. 핵심 부품은 물론이고 사소한 부품까지 수입하고 제작, 생산이 외국에서 이뤄지는 제품을 과연 국산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면 휠라 코리아 제품은 브랜드는 비록 '메이드 인 이탈리아'지만, 옷이나 신발에 사용되는 재료나 소재는 물론, 개발 및 생산이 모두 한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메이드 인 코리아'나 다름없다. 어쨌든 신문 광고를 계기로 '국산품 논란'이 벌어졌고,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추락하던 매출도 3개월 만에 간신히 회복세로 바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심각한 위기를 맞았던 다른 외산 브랜드도 덕을 봤다고 한다.

나는 과거 우리 국민 정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외제품 불매 운동에 반대한다. 만약 우리나라에게 가장 중요한 교역 상대인 미국에서 한국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진다면 우리 산업은 어떻게 될까. 물자, 사람,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건너는 국제화 시대에 해묵은 외제품 불매 운동은 결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한때 "외국기업도 한국에 있으면 한국기업"이라는 구호가 나왔던 것을 생각해보라.

외환위기 직후 벌어진 외제품 불매 운동이 휠라 코리아에 일시적이지만, 전면적인 타격을 입힌 반면, 언제부터인가 등장한 휠라 모조품은 시장을 교란하며 지속적으로 골탕을 먹였다.

원래 누군가가 잘되면 거기에 편승해 덕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휠라 코리아가 성장하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남대문, 동대문 등 재래시장에 휠라 모조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뻔히 가짜인줄 알면서도 가짜를 구입하는 이른바 '짝퉁(가짜 명품을 일컫는 은어) 시장'까지 등장할 만큼 소비자들이 모조품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일반 소비자들은 진짜, 가짜에 대한 분별력이 없었다.

때문에 가짜인줄 모르고 그저 브랜드만 보고 샀던 소비자가 제품의 질이 형편 없다고 항의를 하면 고스란히 휠라 브랜드만 타격을 입는 셈이었다. 휠라 코리아는 곧바로 모조품 소탕 전담팀을 만들어 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모조품 제작업자들을 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주 은밀한 곳에서 모조가 이뤄지는데다 거래도 주로 재래 시장에서 꼭두새벽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현장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단속권이 없는 회사 직원들이 천신만고 끝에 모조품 제작업자들을 붙잡았다고 해도 경찰이나 검찰에 넘겨 수사를 의뢰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재수 없게 붙잡힌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풀려났고, 또 다시 모조품 제작을 했다.

어쩌면 모조품이 생긴다는 것은 브랜드에 도움을 주는 측면도 없지 않다. 갖고 싶지 않은 브랜드에는 모조품도 없다. 거꾸로 모조품이 있다는 것은 명품으로서 인정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모조품 범람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시장 교란 행위지만,모조품 단속이 하도 힘들어서 요즘은 이런 생각으로 자위를 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