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골프할 때 제대로 친다고 쳤는데 코스를 벗어날때 오비(OB, Out of Bound)라고 하잖아요? 그게 나예요. 집안에서 오비난 남자. 그런데 마라톤에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가 없거든. 이젠 와이프도 이해해. 술이나 노름에 빠지는 것 보다는 훨씬 낫잖아요." 산부인과 의사인 고영우(65) 박사의 이름앞에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우스개 소리지만 오비난 남자이고, 영원한 청춘이며, 마라톤 중독자이기도 하고, 이른바 철인이라고도 불린다. 그 모든 호칭을 관통하는 주제는 '달리면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이다. 달리면서 온몸으로 느끼는 무아지경. 그는 "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른다"고 말한다.고 박사는 순수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모임인 백회마라톤모임을 99년 처음 창립했으며 지금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는 동안 마라톤에 100번 이상 나가자는 뜻이다. 그 자신 벌써 61회나 정규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최고기록은 3시간24분17초. 웬만한 청년층도 3시간20분대에 42.195㎞를 완주하기는 쉽지않다.
고 박사의 마라톤 인생은 95년부터 시작됐다. 하루 24시간 언제라도, 밥을 먹다가도 산부의 진통소식을 알리는 전화벨만 울리면 숟가락을 놓고 뛰쳐나가야하는 고달픈 산부인과 개업의 인생, 스트레스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년 열두달을 늘 대기상태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채 살다보니 대학시절 태권도로 단련한 튼튼한 몸도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 중장년층이 흔히 선택하는 골프였다. 그러나 조그만 구멍에 조그만 공을 넣는 것으로는 스트레스가 풀어지지 않았다.
"나는 단 두시간만 뒹굴뒹굴해도 병나는 사람이예요. 몸을 막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 골프는 너무 정적이다 싶더라구. 그때 후배가 '인간의극한에 도전하는 운동'이라는 마라톤을 추천하더군. 솔깃했던 게 나는 뭐든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
그러나 처음 뛴 마라톤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체력에는 자신있었지만 왜 뛰나 싶은 생각이 더 강했다.
"지나고 나니 그게 다 마라톤에 미치기 위한 통과의례였던 셈이예요. 이제 어느정도 경지에 오르니까 마라톤을 하면서 구구하게 이래서 저래서 이유를 늘어놓는 사람을 보면 '음, 초보구나' 싶어. 이유는 없어. 그냥 좋아서 뛰는거지. 일종의 중독상태, 매혹된 상태라고나 할까. 그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고상하게도 부르는데 그보다는 달리는 그 상태가 좋아. 새롭게 내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기분, 거기서 일정한 성취감을 얻는 그 기분이랄까. 노년에 이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뭐가 더 있겠어."
고 박사는 얼마전부터는 생활체조 전국 트라이애슬론연합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소위 철인경기라고도 불리는 트라이애슬론은 마라톤 전부터 시작했는데 극한을 추구하는 도전적 스포츠라는 점에서 마라톤과 마찬가지로 매력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봄 가을엔 주로 전국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를 좇아다니고 여름엔 철인경기에 나간다. 그럼 겨울은? 돌아올 봄을 위해 기초체력훈련을 해야하니 역시 바쁘다.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갈 시간 한번 변변하게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고 박사는 나이들수록 인생에 적극적이어야 노후가 즐겁다고 말한다. 비록 은퇴하고 이렇다할 경제활동이 없다 하더라도 마라톤과 같은 스포츠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 노후의 삶을 더 밝고 건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마라톤이 좋은 것은 이게 정말 싼 스포츠거든. 운동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달릴 수 있어요. 또 요즘 인터넷 보면 마라톤 관련 정보사이트들도 너무 많아서 각종 대회소식이나 운동시 유의점 등 모든 걸 가르쳐주니까 접하기도 쉽지요. 프로들이나 하는 거지 하고 겁내지말고 처음엔 1㎞, 그 다음엔 2㎞ 식으로 조금씩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새 종착지점의 테이프를 눈앞에 두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돼. 그 희열을 더 많은 사람들이 맛봤으면 하는게 내 바람이예요."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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