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3일 하와이에서는 미국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행사가 있었다. 한 세기 전 102명의 선조들이 사탕수수 노동자로 미국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올해가 '한인 미국이민 100주년 기념의 해'로 선포됐고, 200여만 재미동포의 어제와 오늘이 재조명됐다. 더 나아가 720여만에 달하는 해외동포 들의 현주소가 새롭게 부각됐다.■ 2년 후에 또 다시 이민 100주년을 맞는 곳이 있다. 멕시코다. 1905년 1,033명의 선조들은 당시 제물포항을 출발, 75일만에 멕시코의 유카탄반도에 있는 베라크루스항에 닿는다. 이 항구는 대서양으로 향하는 멕시코의 관문이다. 파나마 운하가 뚫리기 전이어서 태평양을 건너 남미대륙을 돌아야 했다. 하와이 이민자처럼 '떼 돈을 벌 수 있다'는 전단에 솔깃했거나, 구한말의 폭압과 어지러운 정세를 견디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인근 메리다 지역의 애니깽 농장 22곳에 수용된다. 애니깽은 선인장의 일종으로 잎을 잘라 으깨면 하얀 실타래가 되는데 이것을 묶으면 튼튼한 선박용 로프가 된다. 이들의 일은 가시에 찔리며 애니깽의 잎을 잘라 다발로 묶어 인근 가공공장에 옮기는 것이다. 애니깽 이민들은 4년의 계약기간이 끝난 뒤 멕시코 전역으로 흩어졌고, 300여명은 바다건너 코 앞에 있는 쿠바로 가기도 했다.
■ 멕시코 한인회는 이민사 발간과 회관 건립 등 16종류의 100주년 기념사업을 3년 전부터 추진하고 있다. 멕시코에는 애니깽 선조들이 씨를 뿌려 5,000세대 2만여명으로 추산되는 한인후손과 이민 온 1만7,000여명의 동포들이 있다. 빈센트 폭스 멕시코 대통령이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직을 수락했고, 멕시코 정부는 한인회관 부지 제공의사를 밝히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 한·멕시코의 바람직한 미래상 구축을 위해 발족한 한·멕시코 21세기 위원회는 100주년 행사가 멕시코에 한국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주요한 기회가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 위원회는 2001년 폭스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설치를 합의, 지난해 가을 서울에서 1차 회의를 가졌고, 7월 멕시코시티에서 2차 회의를 갖는다. 주요 의제는 정보통신(IT) 등 한국 첨단산업의 멕시코 진출, 한국과 멕시코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경제분야에서의 협력방안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문화와 인적교류가 없는 국가간의 관계는 사상누각이다. 기념행사의 활성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