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 거리는 18.44m. 투수가 시속 150㎞짜리 직구를 던질 때 걸리는 시간은 0.45초에 불과하다. 스윙스피드가 제아무리 빠른 타자라도 볼이 최소 홈플레이트 전방 7.5∼9m전방에 도달했을 때 스윙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홈플레이트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0.25초밖에 안된다. 인간반응한계시간이 0.25초인점을 감안할 때 150㎞짜리 직구를 때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연소 300홈런의 금자탑을 세운 이승엽(27·삼성)이 150㎞ 가까운 볼을 손바닥 뒤집듯 홈런으로 만들어내는 가공할 파워는 어디에서 나올까.이승엽의 체격조건은 키183㎝, 몸무게 85kg으로 야구선수치곤 평범하다. 농구선수 같은 큰키와 씨름선수 같은 육중한 몸을 앞세운 전형적인 슬러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타자이다. 그러나 이승엽은 일단 타석에 들어서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괴력을 내뿜는다. 전문가들은 결코 범상치 않은 타고난 운동능력에서 비결을 찾는다.
버드나무 같은 유연성 우선 이승엽의 괴력 원천으로 선천적인 유연성을 든다. 삼성스포츠단 안병철 박사는 "이승엽은 임팩트 순간에 힘을 모으는 집중력과 몸의 유연성에서 홈런비결이 있다"며 "이승엽은 괴력의 소유자라기 보다는 테크닉에 의해 만들어진 슬러거"라고 말했다. 타격할 때 허리 회전에서 나오는 파워를 만들어주는 배(背)근력이 207㎏에 달했다. 우수선수들이 보통 180㎏인 것에 비해서도 월등하다. 임팩트 순간, 집중력을 나타내는 힘인 악력에서도 이승엽은 왼손에서 62㎏, 오른손에서 64.5㎏으로 보통선수들보다 2∼5㎏가 더 높다. 몸의 전후 유연성을 나타내는 테스트에서도 이승엽의 유연성은 확연하게 돋보인다. 일반인들에 비해 이승엽의 유연성은 10배 가량 뛰어나다.
600만달러 사나이의 눈 좋은 타자의 첫째 조건은 시력이다. 흔히 말하는 정지시력이 아니라 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시력을 말한다. 이승엽은 좌우로 이동하는 물체를 보는 좌우동체시력과 정면으로 다가오는 정면동체시력이 일반인들보다 0.5∼1배가 좋다. 볼을 추적해 반응하는 안구능력도 일반사람보다 0.2배나 뛰어나다.
메이저리거급 스윙 스피드 타고난 운동능력 못지 않은게 이승엽의 스윙스피드이다. 2000년 이승엽은 시속 163㎞를 기록한 적이 있다. 180㎞에 이르는 새미 소사 같은 선수도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은 160㎞중후반대이다. 이승엽의 배트파워가 결코 메이저리거들에게 뒤지지 않는 셈이다.
볼을 포착하는 예리한 센서(눈), 팽이처럼 뛰어난 회전력을 갖춘 부드러움(허리), 물흐르는듯한 타격폼과 스피드. 3박자가 어우러져 이승엽이 세계야구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300홈런고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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