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송영주 편집위원의 여자는 왜?] 정신과 의사를 자주 찾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송영주 편집위원의 여자는 왜?] 정신과 의사를 자주 찾나

입력
2003.06.24 00:00
0 0

고통과 슬픔, 좌절이 너무 심해 혼자 힘으로 극복하기 힘들다고 느낄 때, 우울하고 불안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여자들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답답한 가슴을 연다. 여자가 남자보다 정신과 의사를 자주 찾아가는 현상은 우리만의 상황이 아니다. 전세계적 현상이다. 여자는 정말 남자보다 심리적으로 허약한 것인가. 아니면, 남자가 직장에 얽매여 일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여유롭기 때문에 정신과를 자주 찾는 것일까.여자는 남자보다 정신적으로 허약하다?

서울대의대 정신과와 국립서울정신병원이 보건복지부 의뢰로 전국의 18세이상 64세 이하 6,242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주요 정신질환의 평생 유병률(평생에 한번 이상 정신질환에 걸리게 되는 비율)은 남자 38.4% 여자 23.1%이었다. 언뜻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정신질환이 더 많다고 판단하기 쉽지만, 알코올 남용이나 니코틴 중독으로 인한 특정 정신장애를 제외하면, 주요 정신질환에서 성비는 남 6.7% 여 18.8%로 여자에서 정신질환이 2.7배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기분장애(우울증)는 여자가 남자보다 3.2배나 많았고, 불안장애 역시 여자가 남자보다 2.8배 많았다. 미약하지만 정신 분열병도 여자에게 많았고, 신체화장애(갈등, 불만 등 내적 원인이 두통이나 근육통이나 관절통 등 신체증상으로 발병)도 여자가 남자보다 월등히 많이 앓고 있었다.

감정 드러내고 위안받기 원하는 여자들

유병률 뿐 아니라, 실제 정신과 의사를 찾는 패턴에서도 환자들의 성비는 극명하게 차이를 보인다. 연세대의대 정신과 고경봉교수는 2002년 1월부터 12월까지 지난해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외래에서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 200명을 세분한 결과 "우울증은 여자가 62명, 남자는 16명으로 4배이상 많고 신체형 장애는 여자가 39명, 남자가 18명으로 약 2배가 더 많았다"고 말한다. 여자가 실제 의사를 찾는 비율도 높아 우울증이 남자보다 2배가 많다면,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4배 정도 많은 것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조두영 서울대의대 정신과 명예교수(조두영 신경정신과 원장)는 "대학병원을 나와 개업을 해보니, 의학교과서에 나온 남녀비보다 훨씬 많은 비율로 여자들이 정신과 의사를 찾는다는 것을 체감한다" 고 말했다.

여자가 왜 우울증(5월 20일자 여자는 왜? 우울증이 많은가 참조)등 각종 정신질환에 약한지 아직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많은 학자들은 여성호르몬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 실제로 갱년기에 접어들 때 여자들은 호르몬 분비 변화로 우울해지고 불안, 초조가 곁들여져 갱년기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주부우울증이나 산후우울증도 호르몬 분비와 관련된 증상이다. 그러나 많은 의학자들은 여자가 남자보다 정신질환이 많다는 사실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연세대의대 정신과 고경봉교수는 "해부학적 차이로 여자가 우울증에 취약한 게 아니라, 이를 인식하는 능력의 차이로 여자가 더 정신과의사를 찾을 수 있다"고 추측한다.

나약함을 부정하는 남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에서도 "여자가 남자보다 우울증이 많은 이유는 여자가 우울증을 더 빨리 느끼기 때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예민한 여자들은 감정적, 신체적 이상 증상을 재빨리 감지하고, 외부에 서둘러 도움을 청하게 된다. 표현력도 상대적으로 좋고, 감정 이입에도 능한 여자들은 의사에게도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전달,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남자환자들보다 훨씬 잘해주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성장하면서, 우울한 상태에 빠져도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길 거부하고 심지어 부정한다는 것이다. 고교수는 "남자들은 감정 표현하기를 꺼린다"면서 "대신 술이나 약물 중독, 폭력적 행동으로 위안을 얻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자는 힘이다' 라는 뿌리깊은 인식 속에서, 자신의 나약한 정신을 타인에게 노출시킨다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으로 남자집단에서는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반사회적 행동으로 위안을 얻겠다는 생각이 남자들을 술이나 약물에 대한 탐닉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여자에게 지워진 많은 짐

해부학적 남녀 차는 차치하고, 자녀양육 남편내조 가정살림 등 여자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는 여자들을 심한 스트레스에 허덕이게 한다.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여자는 사회의 마이너리티이다. 주어진 의무는 벅찰 정도로 무거운 데 비해,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가기에는 남자보다 훨씬 많은 제약과 상대적 불이익을 경험한다. 조두영 원장은 "복잡한 인생에서 가족이나 사회의 도움의 손길 역시 불충분할 때, 많은 여자들은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해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호소하게 된다"고 말했다. 결혼 이혼 배우자나 자식 사망 실직 퇴직 임신 유산 등 여러 가지 인생사와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는 사회로부터 효과적인 도움을 얻지 못하면서도, 여자들은 늘 가족이나 주변을 즐겁게 편안하게 안락하게 돌보아주어야 한다는 욕구와 강박증에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고교수는 여자가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들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남자보다 강하다고 주장한다. 고교수는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 여자가 더 잘 적응하며, 이혼했을 경우에도 여자가 더 잘 적응한다"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을 때도, 조사결과, 남자가 더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남자보다 생활사건에 여자가 더 고통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여자들은 남자보다 온갖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강해 남자보다 병에도 덜 걸리고, 훨씬 장수한다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약하다는 설명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여자가 정신과의사를 자주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정이나 신체적 자극에 예민하듯 여자들은 건강에도 관심이 높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구나 자각하면, 여자들은 지체없이 병원에 간다. 실제로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여자의 병의원과 약국 이용률은 남자보다 높게 나타났다. 대신 병원 입원율은 남자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남자들은 속으로 곪다 못해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는 것이다. 정신장애에서도 남녀차는 그대로 반영된다.

/yjsong@hk.co.kr

■정신질환 예방 조언

● 서울대의대 조맹제교수

여자들이 정신장애를 호소하는 것은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면 정신병에 시달리지 않을 텐데'라고 투덜거리는 무식한 남편을 볼 때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우울증은 100% 예방할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나는 안되겠구나라는 비겁한 생각을 버리고, 내 병은 내가 극복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규칙적인 운동과 적절한 영양섭취를 하라. 과다한 음주나 흡연은 우울증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다.

가난은 우리에게 경제적 어려움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황폐함을 준다. 사회적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서적 지지그룹을 형성하라.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말고, 남편 애인 정신과의사 목사 상담가 등 주위에 도움을 청하라.

● 연세대의대 고경봉교수

아무 것도 잘못된 것이 없는 듯 행동하지 말라. 자신의 신체적 변화에 민감하라. 남자의 허상에 연연해 하지도, 우울을 부정하지도 말라. 감정 표현에 좀더 솔직해져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느꼈을 때 정신과의사의 상담을 받는 것을 남자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여겨선 안된다. 남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관심의 범위를 넓혀라. 직장과 일에만 가치를 두지 말고, 가족, 사랑 등에도 관심을 가져라. 권력 지향보다는 안전 지향으로 삶의 전략을 바꾸라. 직책 직위에 연연하지 말라.

신체의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라. 몸에 이상이 오면 피로감도 심하고 의기소침해진다. 여자처럼 주변에 도움을 청하라. 이렇게 하면 남자도 여자처럼 병에 걸려도 쉽게 빠져 나오고, 또 오래 살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