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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명 "섹시"… 거리가 뜨겁다/디자이너들이 말하는 노출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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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명 "섹시"… 거리가 뜨겁다/디자이너들이 말하는 노출패션

입력
2003.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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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노출의 계절. 어깨만 드러내도 '왜 벗고 다니냐'는 핀잔을 듣던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은 어깨와 등, 심지어 가슴골을 어떻게 드러내느냐가 패션 코드다. 스스럼이 없는 것은 여자만이 아니다. 권상우나 김래원 같은 남성 청춘스타들이 CF와 드라마에서 멋진 가슴 근육을 노출하더니 셔츠 앞여밈 단추를 두세개씩 풀어내거나 몸에 착 달라붙는 런닝셔츠 차림으로 잘 발달된 삼두박근을 자랑하는 남성들도 많아졌다. 노출패션의 미학, 혹은 노출의 즐거움을 박윤수 손정완 이정우 홍승완 4인의 남녀 패션디자이너들이 풀어냈다.노출도 패션이다

박윤수 패션은 기본적으로 라이프스타일의 영향을 받는다. 요즘은 섹시하다는 말 만큼 극찬이 없다. 자기신체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있는 사람만이 섹시코드에 맞는 노출을 할 수 있다. 노출패션은 결국 몸에 대한 관심과 그 몸을 잘 단련했다는 자부심의 다른 표현이다.

손정완 패션트렌드를 봐도 2000년 들어서는 성적 매력의 극대화가 화두다. 젊고 섹시한 몸은 그 자체로 경쟁력을 인정 받는다. 자신만 있으면 누구나 몸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홍승완 최근 경기침체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디자인하면서 모 전문대학에 출강하는데 성실하게 공부만 하는 학생보다 외모를 잘 가꾸고 섹시한 학생들이 더 취업이 잘된다. 불황으로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섹시한 외모는 남보다 더 주목받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정우 외국문화와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1994년 처음 파리컬렉션에 갔을 때 서구문화의 섹시즘 추구에 너무 놀랐고 도저히 그 벽을 넘을 수 없을 것 같아 절망하기도 했다. 이미 그들에게 패션은 유혹의 코드였던 셈이다. 최근 젊은층의 대담한 노출패션은 이들이 해외 트렌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결과다.

손 90년대까지의 노출문화가 기본적으로 관음증에 기대고 있다면 요즘의 노출패션은 보는 것 뿐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예전에 노출은 여성의 몫이고 그것을 보는 것은 남성이었지만 요즘은 남성도 노출한다. '보여주는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노출패션에도 역사가 있다

박 한국에서 진정한 노출패션이 꽃피운 계기는 지난 월드컵 때였던 것 같다. 당시 태극기나 응원용 손수건 등으로 절묘하게 가슴과 힙을 가린 여성들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 대담성과 창의성은 디자이너들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손 노출패션은 오히려 1960년대에 더 왕성했다. 당시 엄앵란이나 최은희 등의 여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가슴골을 많이 노출한 몸에 착 달라붙는 민소매 원피스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70년대 유신시대부터 노출패션의 암흑기가 됐다. 장발도 금기시되던 시절이니 윤복희식의 미니스커트가 말이나 됐겠는가.

홍 80년대 대학을 다닐 때 만해도 디스코텍에서 홀터넥 원피스 입은 여성을 보면 서로 부킹하느라고 난리가 났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트에 가보면 브라 탑만 달랑 걸친채 춤추는 여자들이 너무 흔하다. 노출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이 최근의 노출패션은 미니멀리즘의 시대였던 90년대가 가고 로맨티시즘이 2000년대의 메가트렌드로 자리잡은 것과도 연관이 있다. 여성미를 극대화하다보니 신체부위를 더 많이 노출하게 됐고 굳이 확 벗지않더라도 속살이 비치는 시스루나 레이스 소재등을 활용해 섹시한 멋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노출패션에는 책임이 따른다

손 노출패션의 성패는 오히려 제대로 가릴 줄 아는데 있다. 홀랑 많이 벗는다고 노출패션이 아니다. 그건 홀딱 벗는 포르노배우가 명배우의 반열에 들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노출패션이 유혹 코드를 갖는다고 말할 때 그 유혹은 아슬아슬한 성적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다 벗어 던지면 더 이상 볼 게 없는 데 뭐가 매력이 있겠나. 뭔가 더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노출패션의 핵심이다.

박 노출패션은 몸을 추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브라운 계통의 어깨와 가슴이 많이 드러난 옷을 입을 때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갈색으로 선탠된 팔이 드러나면 아름답지만 그냥 허여멀건한 팔이 드러나면 뭔가 좀 선정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결국 얼마나 많이 벗었느냐 보다 어떻게 벗었느냐가 초점이다.

이 패션 빅팀(fashion victim, 패션의 희생자. 자신과 어울리지않는데 무조건 유행을 좇아 꼴불견이 되는 사람을 지칭)이 되지않는 게 중요하다. 지금 미니스커트가 유행이라고 각선미가 따라주지 않는데 무조건 짧은 치마를 입는 것 같은 경우다. 노출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소위 '시각공해'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노력과도 통한다.

홍 마른 사람만 노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요즘은 이상적인 몸매와 스타일이 너무 하나로 고정되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날렵하고 마른 몸매를 이상적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통통하더라도 자신의 몸매가 가진 풍성한 아름다움을 또한 강조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감 있고 당당한 노출은 아름답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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