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 이승엽(27·삼성)이 세계 야구사에 길이 남을 커다란 이정표를 하나 세웠다. 세계 최연소(26년10개월4일) 300 홈런 등정의 대기록이다.22일 전날과 마찬가지로 만원 관중으로 가득 찬 달구벌. 이승엽의 300호 홈런을 기다리는 삼성팬들의 표정은 들떠있었다. 아버지 무등 위에 탄 어린 아들도, 한껏 멋을 낸 대구 미인들도 모두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자리에 일어서 한 목소리로 '홈런'을 외쳤다. 3번의 타격 기회를 좌익수 플라이와 볼넷, 1루수 땅볼로 무산시킨 이승엽. 그러나 지난해 뇌수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300호 홈런선물을 전하고 싶다는 아들 이승엽이 4번째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눈에서 매서운 빛이 스쳐지나갔다.
이승엽이 팀이 2―3으로 뒤지던 1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상대 선발 SK의 김원형의 몸쪽 높은 직구 초구를 통타,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아치를 그리자 대구구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하늘에서는 대기록 달성을 알리는 축포가 터졌고 표정 변화가 없기로 유명한 '코끼리' 김응용 삼성감독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1995년 5월2일 해태와의 광주 원정경기에서 1호 아치를 그린 후 8년 1개월 20일, 1,075경기만에 이룩한 대기록이다. 2000년 당시 32살의 장종훈(35·한화)이 1,565경기만에 300홈런을 달성한 것보다 무려 490경기를 앞당기는 가공할 홈런페이스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알렉스 로드리게스(텍사스 레인저스)가 27세 8개월6일만에, 일본 프로야구의 왕정치는 27세 3개월11일만에 300홈런고지에 오른 적이 있다.
대기록 달성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이승엽은 9회말 4―4로 팽팽히 맞서던 2사 만루 마지막 타석에서 구원부문 1위를 달리던 조웅천을 상대로 볼카운트 2―1에서 극적인 끝내기 그랜드슬램까지 쏘아올려 자신의 300홈런을 자축했다.
새로 쓰는 세계 야구사의 홈런페이지에 이제 첫 장을 열었을 뿐이다. 4월5일 대구구장 개막전에서 연타석 홈런포를 가동하며 신기록 달성의 첫 걸음을 뗀 이승엽은 올 시즌 63경기에서 33개의 아치를 그려, 경기당 0.52개의 홈런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기세대로라면 69개의 홈런까지 기대할 수 있어 1999년 자신이 세운 한국최다 홈런(54개)기록 경신은 물론, 왕정치가 세운 아시아 최다홈런(55개)기록도 '가볍게' 갈아 치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잠실 경기에서는 최상덕의 선발 호투와 진필중의 철벽 마무리를 발판으로 기아가 두산에 5―2로 역전승했다. 전날 최소경기 1,000안타 기록을 수립한 이종범은 이날도 동점 안타를 터뜨리며 팀의 2연승을 주도했다.
수원에서는 한화가 현대를 5―2로 꺾었고 마산에서는 홈팀 롯데가 LG를 6―2로 누르고 7연패의 늪에서 탈출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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