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인사청탁 과정에서 돈을 주고 진급을 하지 못하면 돈을 돌려 받는 문화가 있다. 장교사회의 철칙이다. 지금까지 뒤탈이 난 인사 청탁용 뒷돈 거래는 진급을 하지 못했는데도 돈을 돌려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진급을 위한 돈 거래는 워낙 은밀하게 이뤄질 뿐 아니라 돈을 받는 상관과 진급하는 청탁자 모두 득이 되는 '윈∼윈 상황'일 때는 영원한 비밀로 묻히기 때문에 거의 적발이 안 된다."군 사정기관의 현역 영관급 장교가 털어놓은 이 같은 말은 개혁 구호의 홍수 속에서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군 인사 청탁용 뒷돈 거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군의 또 다른 영관급 장교도 "진급이나 인사 철이 되면 'XX에게 봉투를 갖다 주라'고 권유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말로 군 내 '매관매직' 풍토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했다.
최근 군 내 비리가 잇따라 적발되면서 군 부패사슬이 또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군 장성이 장병들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복지금을 횡령하고, 군내 비리를 적발해야 할 합동조사단장(헌병)과 기무사 관계자까지 뇌물을 받으며, 군 법무조직의 수장인 법무관리관이 수사비 횡령 혐의로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는 상황이다 보니 군 사정기능이 마비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뒷돈 거래의 구조화
군 내에는 '중령보다 대령이 가난하고, 준장이 대령보다 돈이 없다'는 말이 퍼져 있다. 진급 경쟁이 가장 치열한 대령 진급, 장군 진급을 위해 뭉칫돈이 오고 가는 '돈과 진급의 함수관계'를 빗댄 말이다. 군의 한 장교는 "중령은 53세, 대령은 56세까지 정년을 보장을 받기 때문에 일단 돈을 쓰더라도 기를 쓰고 진급을 하려고 한다"며 "장교들은 진급이 되지 않으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옷을 벗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돈으로 계급을 사는 관행은 창군이래 계속 됐으나 육사출신 엘리트 장교로까지 확대된 것은 하나회 숙청 이후부터. 육군의 한 대령은 "군 인사를 좌지우지하던 하나회 숙청으로 생긴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뒷돈 거래가 본격화했다"며 "게다가 뒷돈 수수 등의 의혹을 받아온 인사들이 장관으로 기용되면서 뇌물 관행이 정착했다"고 말했다. 군 수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특히 해군과 해병대 등에서 진급을 위한 뇌물문화가 만연해 있다"며 "돈을 주고 진급을 한 사람들은 그 돈을 메우기 위해 다시 부하로부터 돈을 받는 악순환이 거듭돼 뇌물구조를 뿌리뽑기가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한 장교는 "인사시스템으로만 보면 군만큼 체계적인 곳이 없을 것"이라며 "워낙 인사 적체가 심한 상황이다 보니 인사위원회에 제출되는 근무평정 1순위를 받고도 진급을 못하는 일이 많은데 어쨌든 진급의 우선권을 받을 수 있는 평정 1순위를 받기 위해 상관에 돈을 쓰는 일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이 장교는 또 "일선부대의 작전참모 등 소위 진급코스의 보직을 받기 위한 로비도 치열하다"고 전했다.
군의 은폐 문화와 도덕 불감증
지금까지 진급을 둘러싼 돈 거래에 대해서는 군 수뇌부의 묵인 아래 군 수사기관이 거의 손을 대지 못했던 점도 군내 인사비리를 근절시키지 못한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군 수사기관 관계자는 "몇 년전 장교들의 진급을 다루는 육군 인사 부서의 한 영관급 장교가 인사청탁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구속됐다가 파문이 커질 것을 우려한 군 수뇌부가 앞장서 이를 덮었다"고 밝혔다.
최근 경찰에 적발된 인천공항 외곽경계시설 공사는 군의 도덕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준다. 군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개인적으로 인품이 훌륭한 것으로 군내에 소문 나 있는 장성이 거액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이는 개인의 업무 스타일과 성품과는 무관하게 사례비와 금품 수수에 무감각한 군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 해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검찰수사비 횡령사건을 감찰한 국무총리실 공직기강조사팀도 "활동비 횡령 등은 육군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불법 예산집행 사례"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이재명 팀장은 "돈으로 계급을 사는 군 내 부패구조는 안보의 보루인 군의 전체적인 위화감과 불신 문화를 조성해 결과적으로 국가 안보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사회 다른 곳에 비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호 기자 azure@hk.co.kr
■ 군 비리척결 대책은
현재 군은 사정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국방부 감사관실이 2일부터 각군 복지시설에 대한 전면 감사에 돌입했고, 수사기관도 비위 첩보에 대한 광범위한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조영길 국방장관이 13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예고한 대로 대형 군 비리 사건이 추가로 터질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는 다양한 비리척결 대책을 내놓고 있다. 국방부는 우선 내부고발 활성화를 위해 '내부 공익신고센터'를 국방부 합참 육·해·공군과 국방부 직할기관 및 산하단체에 설치해 다음달 1일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현재 육군의 고충신고함, 해군의 부패·공직기강 신고, 공군의 중앙소원수리센터 등 각각 다른 명칭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구들을 '내부 공익신고센터'로 통일해 신고 효과를 높이겠다"며 "부정부패 등 각종 비위는 물론 구타, 가혹행위를 신고받게 되면 원칙적으로 1개월 이내 조치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신고 내용은 감사 부서장이 처리하되 중요 사항의 경우 기관장 또는 부기관장에게 보고된다.
국방부는 또 지금까지 조달본부 등 일부 부대에만 적용됐던 전자입찰제도를 다음 달 1일부터 전부대에 확대 시행해 군 관계자와 응찰자의 유착을 방지할 계획이다.
육군은 최근 인사청탁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종합대책을 만들었다. 육군은 은밀하게 이뤄지는 청탁 대신 공개적이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전달되는 공문서를 통한 추천은 권장하기로 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앞으로 청탁을 받은 인사 실무자나 인사권자는 청탁행위임을 당사자에게 통보해야 하고, 청탁이 계속되면 '인사군기 문란자'로 간주해 불이익을 주게 된다. 공군도 다음 달 진급정책 회의를 열어 인사비리 근절방안의 하나로 상급자에 대한 하급자의 평가를 포함한 '다면평가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군이 '고강도 대책'이라고 내놓고 있는 비리 척결책으로 뿌리 깊은 군 비리 문화가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각종 군 비위사실이 보안을 명분으로 위장되는 일이 많고, 엄격한 처벌보다는 쉬쉬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군 수뇌부가 비리 척결의지를 밝히면 상당수 군인들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게 사실"이라며 "군 수뇌부에 대한 신뢰회복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많은 장교들은 또 "기무 헌병 검찰 등 복수의 사정기관이 버티고 있는데도 군내 부조리가 뿌리 뽑히지 않는 것은 사정기관 자체가 부패한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군내 사정기관간 상호 견제는 물론 사정에 대한 사정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정호기자
■장성·합조단장등 연루 올 공개된 비리만 5건
지난 해 10월 고추 납품 비리 사건에 군 부대 관계자들이 연루되자 군 고위 관계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8개월 뒤인 13일 국방부 장관은 연이어 터져 나온 현역 장성 등이 포함된 군 비리 사건에 대해 거의 같은 내용으로 사과했다.
올해 터진 군 비리 사건은 공개된 것만 5건. 4월10일에는 현역 장성 4명과 대령 3명 등 모두 9명이 관련된 국방부내 국방회관 수입금 횡령 사건 결과가 발표됐다. 서모 관리소장(군무원 4급)은 약 4년동안 3억여원을 횡령해 직속상관인 국방부 복지근무단장과 참모장에게 7,600만∼수백만원씩을 상납했다. 이 사건은 서씨가 1차로 관리소장을 맡았던 1993∼98년의 기간은 빼놓고 99년 이후의 수입금 횡령부분만 손을 댄 채 수사가 종결됐고, 피의자 9명 중 장성 1명 등 5명이 무혐의 또는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국방회관 사건이 터진 4월10일 육군본부 감찰차감(준장)도 진급 청탁 명목으로 후배 장교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4월19일에는 진급 청탁과 취업 알선 명목으로 이모 육군 준장으로부터 2,500만원을 건네 받은 전 전남도의원 권모씨가 불구속 기소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12일 경찰이 발표한 인천공항 외곽시설 공사 관련 뇌물 사건은 군 시설 공사 책임자인 전·현직 국방부 시설국장 2명과 전 합조단장 등이 연루돼 충격을 주었다.
13일에는 대구공군기지 부대장(공군 준장)과 기무부대장(대령진급 예정자) 등 3명이 민간아파트를 군 관사용으로 매입하는 과정에서 향응과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밝혀졌다. 현재 중령 2명이 구속되고 장군 1명은 불구속 상태에서 계속 조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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