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월 14일자 A10면에서 모처럼 감동적인 기사를 하나 읽었다. 송용창 기자가 쓴 "새만금 중단보단 보완모색"이란 제목의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기사의 내용인즉, 환경운동연합 부설 시민환경연구소의 소장인 장재연 아주대 교수가 "이제 새만금 사업 중단이 아니라 수정, 보완을 이야기하자"며 환경단체의 자성을 촉구하고 나섰다는 것이다.장 교수는 "환경운동진영은 방조제 공사만 일단 중지하면 모든 대안에 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은 했지만 결과적으로 전북에 대한 배려(가시적 대안)를 구체화하지 못해 전북도민의 마음을 잡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대안없이 사업을 뒤집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것은 전북도민을 더 자극시켜 전북과의 타협을 더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 교수는 "환경단체와 전북도민들이 화해해 진정한 전북 발전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선하다. 나는 새만금 문제를 다룬 수십여편의 신문 칼럼들을 읽으면서 그 천편일률성에 놀랐기 때문이다. 새만금 반대는 개혁과 진보의 상징이었다! 칼럼 필자들은 자신이 생명과 환경을 사랑하고 집단 이기주의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데엔 성공했다. 그러나 전북도민을 이해해 보려고 애쓰거나 환경친화적인 대안을 고민하는 칼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이해와 고민은 정권의 몫이고 지식인은 생명과 환경만 사랑하는 열변을 토하면서 정권만 비판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실제로 많은 지식인들이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거론하면서 새만금 문제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새만금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새만금 반대 방식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장 교수의 생각에 감동을 느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제발 환경 문제를 겉만 보지 말고 속도 보자. 지방의 개발 욕구가 과도하다면 그건 바로 이른바 '서울공화국' 체제의 산물이다. 서울은 지방을 죽이는 무서운 괴물이 돼 버렸다. 전북의 경우 1960년대에 250만명대였던 인구가 지금은 180만명대로 쪼그라들었다. 도무지 전북에선 먹고 살 길이 없어 전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매일 평균 100여 명에 이른다.
객지에 나가 빈민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개발에 매달리는 지방 사람들의 정당한 욕구를 탐욕과 집단 이기주의로 비판하는 게 말이 되는가? 물에 빠진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당신들이 잡고 있는 건 지푸라기이기 때문에 곧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하는 걸로 환경운동의 임무는 끝인가?
새만금과 관련해 쏟아져 나온 지식인들의 담론은 한국 개혁·진보 진영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비단 새만금 문제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에 집착하는 것도 좋지만 그 어떤 이슈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 좀더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서울 지식인들이 앞으로 생명과 환경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표현하는 신문 칼럼을 쓸 때엔 반드시 다음에 서울공화국 체제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칼럼도 써주길 바란다. 지방 지식인이 쓰면 그것도 집단 이기주의로 욕먹는 세상이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은 집단 이타주의로 살아가는가?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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