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가 끝난 후 송강호씨가 그러더라구요. '대표님, 올해부터 상금이 없어졌대요'. 돈 복이 없나 봐요."영화 제작자는 영화 흥행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지만 차승재(43·사진) 싸이더스 대표에게 올해는 더욱 그랬다. 잇단 영화 흥행 실패로 '곧 망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돈 게 엊그제 같은데 20일 대종상 시상식에서는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이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조명상 등 4개 부문, '지구를 지켜라'가 신인감독 등 3개 부문, '로드 무비'가 2개 부문 모두 9개부문을 휩쓸었다. 본상 19개 부문에서는 8개 부문에 해당한다. 한 영화사의 3개 작품이 이렇게 많은 상을 받은 것도 드문 일이지만 '당연하다'는 반응은 대종상 사상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사실 문화 생태계의 지킴이가 되겠다는 수상 소감은 스크린쿼터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너무 미지근하게 했다고 타박 맞았어요." 차승재 대표가 우리 영화계의 생태 지킴이인 것만은 틀림없다. '살인의 추억'은 관객 500만명을 돌파, 작품성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했지만, 최근 1, 2년간 그가 제작한 영화는 다른 영화사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실험적 영화였다.
'로드 무비'(감독 김인식) '지구를 지켜라'(감독 장준환)는 평론가들로부터 격찬을 받고도 흥행에 참패해 위기를 몰고 왔고, '화산고' '무사' 등 한국 영화의 지평을 확대한 새로운 영화 역시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기획 단계에서는 작품성과 흥행 가능성을 적절히 조화시킨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눈깔 사탕 같은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는 게 그의 고집이다. 골격을 유지하며 트렌드를 가미하는 '리바이스 청바지'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삶에 대한 이해가 깊고, 큰 스케일의 영화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게 봉 감독의 장점이라면 장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이 높다"는 게 그의 평가. 봉 감독의 첫 번째 영화 '플란더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에게 다시 영화를 맡긴 것처럼 장 감독에게도 다시 영화를 맡길 작정이다.
한국외대 불어과 출신의 차 대표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대 초. 대학 졸업 후 의류 사업, 카페 운영 등으로 돈을 벌었지만 사기를 당해 몽땅 날렸다. 영화 '걸어서 하늘까지'(92)의 현장 스태프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후 95년 '돈을 갖고 튀어라'를 처음 제작했다.
"영화 제작만으로는 영화사가 존립하기 힘들다"는 그는 앞으로 배급업에도 진출, 수익구조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살인의 추억'의 흥행으로 그 동안에 진 빚 중 절반 정도를 갚을 여유가 생긴 덕분이다. "제작자일 뿐인데 한국 영화 지킴이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부담스럽다"는 그는 "영화사 식구들 취향이 비슷해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온 것"이라며 겸손해 했다.
"인터넷 작가 귀여니의 소설 '늑대의 유혹'도 영화로 준비 중"이라는 그에게서는 여전히 돈 냄새보다는 사람 냄새가 많이 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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