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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의 세상읽기/ 혼혈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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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의 세상읽기/ 혼혈 공포증

입력
2003.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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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딸을 일본으로 유학보내기로 한 친구의 걱정. 일본 놈이랑 결혼하겠다면 어떻게 하지?유난히 일본쪽을 고집했던 딸 애가 지나가는 말처럼 ‘일본남자들이 얼마나 잘 생겼는데’라고 했다는 것이다.큰 애를 미국으로 떠나 보낸 나는 그럼 미국 사위 볼 걱정을 해야 하나.한국인 유학생과 결혼해 처가를 찾아온 할리우드 스타 웨슬리 스나입스를보면서 스쳐간 생각이다.

아닌게 아니라 큰 애는 얼마전 이렇게 물었었다. 엄마, 나 외국인하고 결혼한다면 어떻게 할꺼야?국적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지, 좋은 사람이라면 어느 나라건 상관없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닌지라 일단은 교양있는 답변을 들려줬다.

이러다 정말 서양애를 데려오면 어떻게 하지? 웨슬리 스나입스 같은 흑인일수도 있어. 우리가 평소 좀 내려다 보는 동남아쪽 사람일 수도 있고….생각이 번져가면서 그저 빈 말이라도 ‘한국남자 아니면 절대 안돼’ 못을박을 걸 그랬나 후회도 됐다.

그런데 왜 한국 남자 아니면 안 되는데?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할 말이 없어졌다. 서양남자들처럼 싫증난다고 조강지처 버리지 않을 테니까? 요즘의이혼세태를 보면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100% 순수 혈통의 손자를 원해서? 어차피 아들도 없는데 이것도 궁색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한국 남자와 살아보니 정말 좋아서? 이건 정말 오, 노 이다. 주변에 국제결혼한 친구가 꽤 있는데 그 남편들이 부인 대접하는 걸 옆에서보고 있자면 감탄이 절로 난다.외국인 사위에 대한 때이른 걱정은 아마도 한국인 특유의 혼혈 공포증 탓이리라. 사방이 가로막혀 섬이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오래 살다 보니 우린밖에서 들어온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본능적 두려움을 갖고 있다.

오죽하면 국제화 시대라는 21세기에 인기 탤런트가 혼혈임을 고백하면서여전히 눈물을 흘려야 할까. 한가지 희망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고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이 생각보다 너그러웠다는 점이다. 그 직후에 실시한어떤 신문의 조사에 의하면 과반수가 훨씬 넘는 응답자가 ‘자녀가 국제결혼을 원한다면 당사자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대답했다니까.

지구촌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얽혀 사는 미국의 경쟁력을 생각하면 우리의 혼혈 공포증은 극복되어야 마땅하다. 웨슬리 스나입스의 부인 박나경, 우디 앨런의 부인 순이의 이름이 유독 반가운 것은 그 치료의 조짐으로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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