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부 소도시 파르마는 오페라의 거장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고향이다. 모차르트, 바그너와 함께 3대 오페라 작곡가로 꼽히는 베르디는 이 도시의 변두리 식당 집 아들로 태어나 생애 대부분을 여기서 지내며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이 때문에 그는 이 도시의 상징으로 살아 있다. 베르디 음악 전문연구기관은 물론 베르디 음악 애호가 모임이 활발하고 거리나 상점 등 어디서도 그의 이름과 사진을 쉽게 접할 수 있다.4월23∼6월22일의 베르디 축제 때 파르마는 그의 오페라를 감상하려는 인파로 뒤덮였다. 특히 파르마 극장의 오페라 공연은 연일 매진됐다. 1829년 나폴레옹의 둘째 부인이 세운 이 극장은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 나폴리의 베니체 극장 등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곳이다. 마리아 칼라스, 프랑코 코렐리,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유명 성악가들이 모두 여기를 거쳤다.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공연이 추진되고 있는 야외 오페라 '아이다' 제작도 이 극장이 맡았다.
축제 폐막을 사흘 앞둔 19일 파르마 극장이 마지막 레퍼토리로 올린 '나부코'는 이곳이 오페라의 메카임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50년 만의 이상 기온으로 낮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했지만 저녁 8시30분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극장 주변은 관광객과 시민들로 메워졌다.
1842년 밀라노에서 초연한 '나부코'는 시골뜨기 작곡가 베르디가 스타로 떠오르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작품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빌로니아 왕 나부코 노조르(느부갓 네살)가 예루살렘을 유린한 뒤 바빌로니아에 노예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자유를 되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바리톤 레오 누치(61)와 페루치오 푸르라네토(54)가 출연하고 브루노 바르톨레티가 지휘한 이날 공연은 그들의 세계적 명성을 확인시킨 무대였다.
플로어와 3면의 5개 층을 꽉 채운 1,300여 관객은 막이 내릴 때는 물론 노래가 끝날 때마다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이 극장은 어느 자리에서건 오페라 가수의 숨소리와 땀방울까지 그대로 느끼며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3막에서 왕권을 쟁탈한 딸 아비가일레가 나부코와 논쟁하는 장면에서는 아비가일레의 치마가 무대 바닥에 걸려 찢어지는 소리까지 생생히 들릴 정도였다.
압권은 역시 3막 4장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노예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그리며 부르는 이 노래는 1901년 베르디의 장례식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수천 명의 합창단이 부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날 남녀 노예로 분장한 100여 명의 합창은 항상 '완벽'을 추구하는 베르디의 오페라답게 절묘한 화음을 이뤘고, 관객들은 연신 앙코르를 외쳐 기어코 그 감동을 한번 더 맛보았다.
오페라를 보고 난 학생 피에트로 코라니(25·파르마대 경제학과)와 앨리사 이타밀리(29·여·회사원)는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누치의 음성은 최고"라며 "이들 때문에 파르마에서는 영화보다 오페라가 훨씬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극장 관리책임자인 리타 파바로니는 이런 반응에 대해 "레퍼토리인 '롬바르디아의 십자가' 등 축제 기간 20여 회의 공연이 모두 매진됐다"며 조금도 새삼스럽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파르마의 오페라 열기는 시의 전폭적 지원에 바탕하고 있다. 엘비오 우발디 파르마 시장은 "올해 오페라 공연에 총 1,200만 유로(약 168억원)를 투입하며 이중 45%는 파르마시가, 10%는 국가가 부담한다"고 말했다.
파르마 극장은 올해부터 2008년까지 베르디의 생일인 10월10일에 베르디의 오페라 전곡 하이라이트 시리즈인 '생일 축하, 거장 베르디'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쿠라, 마르첼로 알바레스 등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이 출연하고, 2006년과 2007년 각각 주빈 메타와 정명훈에게 지휘를 맡겨 베르디 오페라를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키워 나갈 계획이다.
/파르마=글·사진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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