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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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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적 치료를 받겠다고 생각하는 주요 동기 중 하나가 우울증이다. 우울은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자기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무의식이 이미 알고 있을 때 생기는 느낌이라고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 박사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 따르면 그래서 우울은 환자가 성장을 시작한 단계이고, 철저한 정신치료를 받는 기간은 환자가 집중적으로 성장하는 기간이다. 때문에 우울증은 근본적으로 정상적이고 건강한 현상이다. 다만 치료기간 동안 이런 급속성장을 위해서는 이에 맞먹은 양의 '낡은 자아'가 포기돼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정신분열증과 함께 양대 정신병의 하나인 조울증(躁鬱症)은 흥분이나 상쾌감의 조(躁)상태와, 비애나 불안감의 울(鬱)상태가 번갈아 반복되는 감정 증세이다. 사전들을 살펴보니 조상태에서는 낙천적이고 해학적인 경향이 높아지고, 자아감정이 고조되면서 때로는 거만·무례 등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일도 있다. 반면 울상태에서는 슬프거나 불안하고 자아상실감 등의 감정장애가 나타나며 자아감정이 손상돼 열등감·허무감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 사람의 감정에 관해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주가 그의 감정의 단면들을 다시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집무 4개월이 돼가는 시점에서 노 대통령이 어떤 정서적 상태인지를 어렴풋이 드러내는 여러 말들이 지난주에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이젠 걸으면서 생각해야 하겠다"라고 한 말을 조급한 감정적 대응으로 국정혼란을 빚은데 대한 자성의 모습이라고 해석한 보도였다. 그는 "뛰면서 생각하니까 헷갈리기도 했다"고 했고, "그동안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러면서도 잘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다"고도 했다. 그 며칠 전 노 대통령은 한 수석비서관을 엄하게 꾸짖었다. 또 "요즘 내가 신경질이 좀 늘었다"고 했다. 이런 그를 만난 민주당 대표는 노 대통령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고 전했다.

■ 훨씬 전 '대통령직 못해먹겠다'고 했을 때 피로감의 절정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대통령의 감성적 단면들이 자주, 그리고 과다 노출되는 것 같아 보기에 편치가 않다. 이에 비해 노 대통령 부부는 어제 명륜동의 배드민턴장을 찾아 함께 운동도 하고 주민여론도 들었다. 신경질이 늘었고, 외롭고 쓸쓸했고, 시행착오를 고백했던 지난주가 울의 이미지였다면, 건강과 활기의 인상을 보여준 배드민턴 일정은 조의 이미지라 할 만할까. 국민 눈에 비치는 지도자의 이미지는 리더십과 관련된 중요한 요소이다. 미국 같은 나라들이 지도자의 이미지를 전문적으로 장식하고 관리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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