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3남인 김정운(20)을 가장 총애, 정운이 후계자로 지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1995년 북한에서 핵 방사능 피폭 사고가 빈발해 핵 시설 관련자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88년부터 2001년까지 13년간 김 위원장 전속 요리사로 일했다는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56)씨는 20일 출간된 '김정일의 요리인-가까이서 본 권력자의 얼굴'(후쇼사·扶桑社)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평소 온후하나 국정운영에 관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처남인 장성택에게도 스테인레스 재질의 냅킨 통을 던질 만큼 불 같다"고 말했다. 초밥 요리사인 후지모토씨는 82년 일본의 북한계 무역회사로부터 소개를 받고 단신으로 북한에 건너가 '월급 50만엔'의 VIP급 대접을 받으면서 생활하다 2001년 북한을 탈출, 중국을 경유해 일본으로 돌아왔다. 다음은 책과 인터뷰 내용의 요지.
후계구도 2001년 장자격인 성혜림 소생의 김정남이 일본 밀입국에 실패한 이후 고영희 소생의 정철(22)이 부각되고 있다는 설이 돌지만 정철보다는 같은 소생의 정운이 권력을 승계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은 정철에 대해 "저건 안 된다. 여자 같다"라고 자주 얘기했고 아버지를 빼 닮은 정운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고영희는 대단한 미인이다. 김정일은 연애시절 고영희를 벤츠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밤새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을 함께 들었다고 한다.
핵 문제 89년 어느날 김정일은 나에게 "우리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반대하느냐"며 "핵무기를 갖지않으면 다른 나라가 쳐들어 온다"고 말했다. 95년 12월 김기남 당 선전부장이 핵시설에서 방사선 피폭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보고를 했고 김정일은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직후 자기 방에 혼자 틀어 박혀 있던 적이 많았고 94년 핵 위기 당시에는 미 정찰 위성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심야나 이른 아침을 이용해 이동했다.
사생활 김정일은 신천 초대소에서 디스코 춤을 추는 기쁨조 5명에게 "옷을 벗어라"고 주문했고, 무희들은 명령에 따랐다. 연회에 참석한 간부들과 나에게도 함께 춤을 추라고 명령했으며, "춤추는 것은 좋지만 (전라의 무희들을) 만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식량위기가 엄습한 94년 이후에도 김정일의 식탁에는 온 세계의 사치스런 먹거리가 가득했고, 그는 참치 뱃살, 방어 등의 기름진 초밥을 즐겨먹었다.
92년 김정일 낙마설은 사실이다. 사고가 나던 날 승마대가 선두에, 그 뒤에 김정일, 고영희, 나, 아들들의 순서로 달렸다. 이때 김정일의 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낙마했고 머리와 어깨를 부딪치면서 쇄골이 부러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날 밤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바람에 열차로 후송됐다고 들었다.
불 같은 성격 김정일은 평소에는 취미가 많고 온화한 사람이지만 국가운영에 관한 것, 특히 정보를 보고하지 않거나 잘못이 있을 경우 최고 간부급이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호통을 쳤다. 95년 12월 30일 김정일 앞에 7명의 대장이 늘어서 있었는데 김정일이 한 대장에게 "그 놈을 쏘았는가" 라고 물었고 대장은 "쏘았습니다"라고 답했다. 살해당한 사람은 반(反) 김정일파일 것이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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