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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넥서스―여섯 개의 고리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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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넥서스―여섯 개의 고리로 읽는 세상

입력
2003.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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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뷰캐넌 지음·강수정 옮김 세종연구원 발행·1만5,000원1960년대 중반 하버드대 조교수이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지금은 '분실한 편지 기법'으로 알려진 간단하지만 유명한 실험을 했다. 미국 네브래스카와 캔자스에 거주하는 사람을 무작위로 선정해서 보스턴에 사는 특정인에게 편지 전달을 부탁하는 실험이다.

받을 사람의 주소를 밝히지 않고 사람들의 손을 거쳐 전달된 편지는 놀랍게도 대부분 여섯 단계 정도를 거쳐 목표점에 도달했다. 몇 사람만 거치면 지인(知人)이 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세상 참 좁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복잡하게만 보이는 세상이 어쩌면 너무나 단순하고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을 오히려 정확하게 표현한 말인지도 모른다.

'넥서스'는 영국의 세계적 과학지 '네이처' 편집장을 지낸 저자가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을 소개하기 위해 쓴 책이다. 네트워크 이론이 학문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책 속의 사례들 역시 수학에서 출발해 물리학, 컴퓨터 공학, 생물학, 사회심리학, 경제학, 사회복지학 등을 종횡무진한다.

하지만 각 장마다 재미있는 실험을 요약해 소개하면서 흥미를 끄는 것은 물론 설명하는 이론들이 전혀 어렵지 않다. 저자가 과학전문기자여서인지 글도 늘어지지 않고 군더더기가 없어 깔끔하다. 이 책은 아마도 미국을 중심으로 번져가고 있는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다양한 얼굴을 한 눈에 대할 수 있는 좋은 교양서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네트워크 이론의 기본 구조는 역시 수학에서 출발한다. 저자에 따르면 헝가리의 수학자 폴 에르되스는 점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비교적 손쉽게 완벽한 네트워크를 이루도록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더욱 놀라운 것은 네트워크가 커질수록 점을 연결하는 데 필요한 연결고리는 상대적으로 간단해진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300개의 점을 잇는 직선의 경우의 수는 거의 5만 개나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중의 약 2%의 직선만 적절히 배치해도 300개의 점은 완벽한 그물망을 이룰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감자장수와 에콰도르 커피 농장의 노동자를 연결하는 데는 몇 명으로는 어림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에르되스의 계산에 따르면 60억 개의 점을 대입할 경우, 절대 필요한 최소한의 연결 고리는 전체 경우의 수의 0.000000004%, 즉 10억 중에 4이면 충분하다. 사람들을 임의로 연결할 때 평균적으로 2억5,000만 명 가운데 한 사람만 안다고 쳐도 전체 인류가 완전히 아는 사람의 네트워크로 연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네트워크 원리가 군중의 행동을 설명하는 모델로 활용될 경우는 미 스탠퍼드대 마크 그라노베터 교수의 이론에서 볼 수 있다. 그는 폭동을 일으키는 군중의 행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람은 누구나 폭동 참가에 대한 '경계값(threshold)'을 갖고 있다고 가정했다. 폭동이 일어나는 원리는 다양한 경계값을 가진 사람들이 군집 내에서 연결 고리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집 내의 개개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매독, 에이즈가 어떻게 확산되는지, 또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를 아는 데도 네트워크 이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생물학과 면역학을 아는 것이 예방이나 처방 조치에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병들이 전염병으로 확산될 것인지, 아니면 조용히 사라질 것인지 사이에는 예리한 분기점이 존재하고, 어떤 질병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하는 분명한 선이 있다. 그리고 그 선은 의외로 간단하다.

요점은 한 사람이 감염된다면 이 사람이 직접 병을 옮기는 사람은 평균 몇 명인가 하는 것이다. 2차 감염자의 수가 1보다 크면 감염되는 사람의 수는 증가하고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며 1보다 작다면 병은 차츰 사그라질 것이다. 극히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마치 원자로의 안전 대책을 세우는 것처럼 감염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것은 전염병을 설명하는 핵심이다.

1990년대 초에 크게 억제된 매독이 미국 볼티모어에서 확산된 것은 그 상황에 크랙 코카인이 더해지고, 의사의 수는 줄고, 성병 억제 역할을 하는 지역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이 병이 한계점을 넘은 때문이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불리는 이 한계점을 넘어서는 사소한 요인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뷰캐넌 등이 쓴 일부 대중적 저작에 힘입어 지난해부터 네트워크 이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네트워크 이론의 성과를 보고 한 물리학자가 "이론 물리학의 과제가 물리 이론의 방정식을 도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분류하고 이해하는 데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평가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 현상의 여러 분야를 설명하는 데 이제 막 이 이론은 주목되는 첫 발을 내디딘 것처럼 보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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