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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32>全光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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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32>全光鏞

입력
2003.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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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6월21일 소설가 전광용이 69세로 작고했다. 전광용의 호는 백사(白史)다. 함남 북청 출신. 경성고등상업학교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1955년부터 1984년까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가르쳤다. 국문학 연구자로서 '설중매 연구' '이인직 연구' 등의 논문을 남겼다.전광용의 대표작으로는 단편 '꺼삐딴 리'가 꼽힌다. 1962년 '사상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파로, 해방기에는 친소파로, 1·4후퇴 때 월남한 뒤로는 친미파로 변신하며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외과의사 이인국의 삶을 그렸다. 표제의 '꺼삐딴'은 영어 '캡틴'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까삐딴'이 와전된 것으로, 해방 후 소련군이 북한에 주둔하면서 조선 사람들도 '우두머리' '최고'라는 뜻으로 흔히 사용하던 말이라고 한다. 작가는 '꺼삐딴 리'라는 표제를 통해 주인공 이인국이 카멜레온 같은 변신을 통해 이루려고 한 바가 이른바 '주류'로의 편입이었음을 암시한다.

전광용은 이 작품에서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개입시키지 않고 이인국이 처한 정황과 심리를 차갑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작가의 풍자에 공감하며 이인국의 기회주의에 혀를 차는 독자들도, 그들이 반성적 독자라면, 자신들 역시 '꺼삐딴'이 되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그리고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기회주의를 일상적으로 실천해왔음을 깨달을 것이다. 힘있는 자 편에 서고 싶은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한국 사회에서 그 욕망이 너무도 자주 윤리의 피륙을 찢어버릴 만큼 증폭된 것은 수난의 현대사와 관련이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꺼삐딴 리'가 풍자하고 있는 것은 개인 이인국을 넘어서 한국 현대사라고도 할 만하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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