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dog·개)로 통하는 듀웨인 채프먼입니다. 6,000여 명의 현상수배범을 잡은 도그는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현상금 사냥꾼입니다. 현대판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많은 악당을 죽인 유명한 총잡이)이죠."이 글은 최근 백만장자인 강간범 앤드루 러스터를 잡은 현상금 사냥꾼 채프먼(애칭 도그·사진)이 자기 홈페이지(www.dogthebountyhunter.com)에 올린 소개서의 일부이다.
도그는 17일 캘리포니아에서 여성 3명을 강간해 보석상태로 재판을 받던 도중 도망친 러스터를 멕시코 휴양도시 푸에르토 발라르타에서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이 사건은 러스터가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맥스 팩터 그룹 상속자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경찰도 잡지 못한 범인을 일개 사냥꾼이 잡았다는 데 또 한번 놀랐다. 할리우드 영화 같기 때문이다.
BBC 방송은 이를 계기로 도그와 미국 현상금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먼저 청소년 시절 무장강도 등의 혐의로 18번이나 체포됐던 도그가 주특기를 살려 사냥꾼의 길로 접어든 이력에 눈길이 간다.
도그는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형을 산 뒤 아이들을 부양할 수 없게 되자 한 판사의 권유로 사냥꾼으로 나섰다. 그는 "나를 잘 아는 판사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을 잡아오면 부양비를 벌 수 있다고 해 시작했다"며 "1주일 만에 범인을 잡아 200달러를 벌었다"고 첫 사냥을 회고했다.
사냥꾼들이 활개치는 이면에는 공권력에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일을 처리해야 했던 개척시대의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서부시대의 분위기가 여전했던 1873년 대법원은 "보석보증인은 주 경계에 관계 없이 달아난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범인이 머문 집의 문을 부수고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보석은 원래 통상 법원이 정한 보석금의 10%를 내고 풀어준다. 단 보석된 피의자가 달아날 경우 나머지 90%를 대납해야 하는 보증인이 이 돈을 바로 내는 대신 일부 또는 전부를 현상금으로 걸어 현상범 사냥꾼으로 하여금 잡아오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최근 버지니아, 애리조나주 등에서는 사냥꾼들이 무고한 시민을 수배범으로 오인, 총을 쏘는 사고가 잇따랐다. 특히 앨러배마에서는 주부를 유괴범으로 오인, 감금한 사건이 발생해 이들의 활동을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냥꾼들은 "수사기관이 들여야 하는 비용과 시간을 줄임으로써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며 "우리는 매년 3만 명 이상의 도망자들을 잡아들이고 있다"고 항변한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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