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장관들이 줄지어 책을 내놓고 있다. 프랑스 정치인들에게 책의 중요성은 지난해 총선 때 후보자들이 잇따라 발표한 책들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은 단순하고 즉각적인 전달의 한계를 넘어 이성과 지적 판단에 호소하며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중요한 정치적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철학교수 출신의 문교부 장관 뤽 페리는 '학교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냈다. 총리 장 피에르 라파랭은 '5월의 프랑스'에서 자크 시라크 현 정부 출범의 의미와 정책을 기자와의 대담 형식을 통해 밝히고 있다. 특히 외무부 장관 도미니크 드 빌팽의 시(詩) 평론집 '불(火) 도둑들에 바치는 찬사'는 시에 대한 그의 대단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을 통해 정치적 방향과 목표를 엿볼 수 있게 해 눈길을 끌고 있다.
'불 도둑'은 19세기 말 반항 시인 랭보가 시인을 비유한 표현으로, 빌팽 자신이 이미 여러 권의 시집을 낸 불 도둑이다. 시집 외에도 두 권의 역사비평서를 썼고, 그 중 나폴레옹을 새롭게 분석한 '100일 천하 혹은 희생 정신'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받은 그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온 800쪽이 넘는 방대한 이 책으로 현 장관들 중에서 으뜸가는 저술가란 평가를 받고 있다.
1953년 프랑스령 모로코에서 태어난 빌팽은 이 책에서 그의 가족이 이국 생활에 따른 향수를 시 읽기와 쓰기로 달랬으며, 특히 그가 16세 때 두 살 위인 형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시로 극복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게 시란 '삶을 바꾸는' 역동적 힘이며, 절망과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자 '생의 창조'를 뜻하고, 시인은 세계를 재창조하고 매료시키는 언어의 마술사인 것이다. 그가 랭보, 보들레르, 로트레아몽 등 당대에는 저주받은 시인들, 가난과 비운 속에 시를 절대로 삼으며 짧은 생을 살다간 시인들에게 유독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불 도둑들에 바치는 찬사'는 핵폭탄의 위협 앞에서 시인이 밝히는 등불의 위력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고, 기술과 경제가 지배하는 '영혼 없는 세계화'에 대항해 다양한 문화의 지구촌 인간들이 언어의 장작불 주위에 모여 앉아 사랑과 평화의 꿈을 불태우는 '시의 세계'를 꿈꾼다.
절대와 이상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자의 열정적 문체로 쓰여진 이 책에는 시인의 꿈을 행동으로 실현하려는 한 정치인의 의지가 담겨있다. 평상시 시와 시인들을 자유자재로 말하며, 이 책에 인용된 모든 시와 책을 읽었다는 외무장관에게 프랑스인들의 기대는 사뭇 큰 것 같다.
조혜영 재불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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