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발 의혹에 대한 미국의 압력과 국내 보·혁대립 증폭으로 모하마드 하타미(사진) 이란 대통령이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제도권 개혁파의 기수임에도 불구하고 신정(神政)권력을 행사하는 보수파와 이에 반대하는 비제도권 개혁파의 틈새에 끼여 운신의 폭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하타미 대통령을 옥죄는 보·혁대립은 18일 대학생 중심의 반정부 시위가 8일째로 접어들면서 더욱 악화하고 있다. BBC 방송은 이날 시위가 최소한 7개 지방도시로 확산됐다고 보도했다. 시위대는 율법정치 종식을 촉구하며 보수파 수장인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의 하야를 외쳤다. 시위대는 또 개혁에 미온적이라며 하타미 정권의 퇴진까지 요구해 기성 정치권을 송두리째 거부하는 태도를 취했다.이원적 권력구조로 인해 개혁에 본질적 한계를 느껴온 하타미 대통령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이란은 국민투표로 선출되는 4년 임기의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와 1989년 종교지도자들이 종신직으로 선출한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이끄는 사법부로 권력이 나뉘어져 있다. 외교, 국방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하메네이가 쥐고 있다.
반정부 시위를 고무하는 미국의 태도는 하타미를 궁지로 몰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8일 시위대를 "자유를 향해 소리치는 용기 있는 지도자들"이라며 "미국은 시위대 편에 확고히 서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란측은 "내정간섭이자 이란을 흔들기 위한 심리전"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란 의회는 이날 미국의 내정간섭을 비난하는 성명을 압도적 지지로 채택했다.
미국의 시위 지지는 이란 보수파가 하타미 대통령 등 개혁파를 공격할 수 있는 빌미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대미 화해를 강조했던 개혁파 의원들도 시위대와 거리를 두는 등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은 18일 "국제사회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해 공동보조를 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란의 핵 보유를 용납치 않겠다고 공식 경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시 대통령의 경고는 미국의 대이란 정책 방향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이란 보수파의 목소리를 강화해 하타미 대통령의 입지를 한층 축소시킬 가능성이 크다.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된 하타미는 2001년 재당선 후 대내외적으로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이제 비제도권의 급진적 개혁요구와 미국의 압력에 반발하는 보수파의 역공에 손발이 묶인 형국이 됐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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